올들어 훈풍이 불던 국내 증시에 11일 '환율' 한파가 몰아쳤다.
지난해말 달러당 1,180원 수준이던 원ㆍ달러 환율이 1,110원대(1119.9원)까지 하락하면서, 그동안 주가 상승을 이끈 정보기술(IT)와 자동차 관련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환율 하락으로 해외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로 외국인이 대거 순매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2.92%), 하이닉스(-2.64%), LG디스플레이(-4.58%), 삼성SDI(-3.66%) 등 IT종목은 2~5% 빠졌고, 현대차(-4.25%)와 기아차(-3.10%)도 비슷한 하락세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환율 하락은 증시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율하락에 따른 환차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 하락이 급격하고 외국인의 투자 이유가 수출업종의 실적 개선에 맞춰져 있는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우증권 안병국 투자정보팀장은 "환율이 예상보다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환율 급락으로 인해 IT 등 수출중심 업종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증권사와 전문가들은 환율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내 증시의 주도주가 바뀌거나 급등락 장세가 나타날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원화가 아직 저평가 상태이고 불안하던 미국 금융시장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의 추가 하락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증권사는 환율 최저치를 1,050원으로 제시했다. 국내 증시에서 IT와 자동차를 대체할 만한 업종이 사실상 없는 만큼, 환율 급락이 이어진다면 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우리투자증권도 이날 내놓은 시황자료에서 "환율 급락으로 연초 강세를 보였던 주도주의 탄력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 하락으로 내수가 살아날 경우에 상대적으로 실적 호전이 예상되는 은행, 미디어, 건설 등에 대한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날 증시에서는 하나금융지주(6.71%)와 우리금융(6.67%)이 각각 6% 대 급등한 것을 비롯해 신한지주(2.81%), 기업은행(2.80%), KB금융(2.07%) 등 주요 은행주가 일제히 올랐다. 한 관계자는 "은행 합병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예상보다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내수주로 분류되는 은행주에 시장의 매기가 쏠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수출 관련주의 실적 개선 추세가 강력한 만큼, 환율 변수가 상승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펴고 있다. 대우증권 고유선 경제금융팀장은 "과거 100엔당 1,000원대 초ㆍ중반 수준의 환율에서 한국 기업이 일본과의 수출 경쟁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환율 수준에서는 해외시장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원ㆍ달러 환율이 하락하고는 있으나, 대일 경쟁력을 가늠하는 원ㆍ엔 환율은 추가 급락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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