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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희망을 줄이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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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희망을 줄이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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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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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새 출발, 목표, 도약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의 하나가 희망이다. 새해는 그냥 새해가 아니고 언제나 '희망찬 새해'다. 새해에 희망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거나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컫는다. 희망은 시간적으로 미래에 의미를 둔다. 과거는 없으며 현재는 참고 견뎌야 하는 희생과 노력의 시간이고 미래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발은 오늘, 지금, 여기 있는데 머리와 가슴은 내일, 후에, 저기의 밖으로 쏠려있다. 앞으로 곧 넘어져 버릴 것 같은 기울어진 불균형한 자세가 희망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발을 앞으로 부지런히 내딛으며 달릴 수밖에 없다. 멈추면 넘어진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속도와 경쟁을 강조한다. 빨리 달려도 다음에는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기록 경신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희망이다. 이제 더 나은 내일을 대가로 현재의 희생을 강요하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한다. "현재가 견디기 어려우니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생존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희망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는 소설 <토지> 의 한 구절처럼 언제까지나 희망에 매달려 현재를 절박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도 '빨리 빨리' 살아왔다. 앞으로 빨리 빨리 달리는 삶은 소중한 것들을 지나쳐 버리게 만든다. 내 곁의 가족도 이웃도 내 자신 조차도 잊고 어디론가 달려가게 만든다. 한국의 40대 사망률은 세계 최고다. 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지금은 달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르고 속도를 줄이는 것이 살길이다. 희망을 줄이는 것이 살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지난 12월 충남 예산군이 전남 담양, 신안, 장흥, 완도, 경남 하동에 이어 국내 6번째, 세계에서 121번째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고 이를 공식 선포하였다. 올해는 슬로시티 총회가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느리게 살기로 행복을 찾는 이 운동은 패스트푸드의 진출로 이탈리아 전통음식이 위협받게 되자 이를 지켜내기 위해 시작한 슬로푸드 운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슬로시티는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고 나 자신을 존중하며 느리게 먹고 느리게 사는 것을 지향한다.

느림과 빠름은 속도의 차이가 아니라 삶의 본질의 차이다. 슬로시티 운동은 산업화가 파괴한 자연과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슬로는 속도와 경쟁과 미래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현재에 대한 즐거운 향유다.

지난해 제주 올레 길을 걷는 것이 유행한 것은 삶의 질에 대한 추구가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30~40대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50대는 일도 많이 한만큼 더 이상의 성공보다는 자연과 삶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삶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한가롭게 거닐기, 남의 말을 잘 듣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을 찾기, 글쓰기, 명상하기 등의 조그만 일들을 실천해 보라고 한다. 이 사소한 '비움'의 행위들이 성장과 도약, 속도와 같은 '채움'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갖는 새해야 말로 나와 이웃이 행복해지는 희망찬 새해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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