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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맘을 부탁해] 1부 (2) 모성 보호법보다 무서운 사내 눈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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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맘을 부탁해] 1부 (2) 모성 보호법보다 무서운 사내 눈치법

입력
2010.01.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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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휴직…"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업무 공백" 눈치에 삼킨다

지난해 9월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감행한 이진화(가명ㆍ30)씨. 국내 대형 보험 회사에 2003년 입사한 그는 입사 5년째인 2007년 결혼과 동시에 임신했다. 임신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때부터 이씨의 파란만장한 눈치 보기 인생이 시작됐다.

몸이 약했던 이씨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들어 회사일을 더하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자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취하려고 아껴 뒀던 연차를 출산휴가와 붙여서 쓰려 했다. 하지만 이씨의 '발칙한 음모'는"안 그래도 출산휴가로 업무 공백이 생기는데 굳이 며칠 더 쉬려 하느냐"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사 때문에 좌절됐다. 결국 그는 간신히 출산휴가만 다녀올 수 있었다.

출산휴가 후 복귀한 이씨에게는 더 혹독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몸이 아파 더 이상 아이를 키워 줄 수 없게 된 것. 그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당연히 상사들은 길길이 뛰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그는 육아휴직서를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간이 문제가 됐다.

이 회사에서는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주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1년 육아휴직을 했다. 이씨는 "솔직히 육아휴직이 끝나고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복직한다 해도 상사나 남성 동료들의 눈치를 계속 봐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미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예외 없는 사내 눈치법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들이 생겼다. 하지만 법에 처벌 조항까지 명시된 제도도 현장에서는 허울뿐인 경우가 다반사다. 워킹 맘들은 "있으나마나 한 제도를, 그것도 눈치 봐 가며 쓰느니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대형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 김연진(가명ㆍ29)씨.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결혼과 동시에 바로 대형 로펌에 입사한 김씨는 결혼 1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법률 도사 김씨조차 출산휴가 이외에는 어떤 모성 보호 관련 법도 활용해 보지 못했다. 김씨는 "법으로 보장돼 있다 해도 단 몇 개월의 공백만으로 사실상 낙오되는 이곳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은 꿈도 못 꿀 일"이라며 "몇 년째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겨 놓은 상태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몇 번이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김씨는 "다른 대형 로펌에 다니는 여성 변호사 중에는 새벽 4시까지 근무하다가 양수가 터져 5시에 아기를 낳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직원은 비정규직 여성들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최지선(가명ㆍ33)씨는 결혼 4년째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2007년 결혼과 동시에 임신했지만 임신 사실을 숨기고 과중한 입학 관리 업무를 하다 12주일 만에 유산했다.

최씨는 "임신 초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의 계약직 여직원들이 임신 직후 계약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보고 무리하게 근무한 것이 원인이었다"며 "지금은 다른 대학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계약직이라 출산휴가를 쓰는 데 눈치가 보여 아직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비정규직 여성들의 경우 계약 연장이 안 될까 우려해 아예 출산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 눈치 보기가 저출산 문제로

워킹 맘들의 직장 내 눈치 보기는 저출산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다. 최씨 같이 아이를 아예 갖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출산 경험을 가진 워킹 맘들도 추가 출산을 하지 않는다. 변호사 김연진씨에 따르면 대형 로펌에 있는 여성 변호사 중 둘 이상 아이를 갖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씨는 "두 번이나 출산으로 공백 기간을 갖게 되면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303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83%가 '저출산 문제에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8.6%에 불과했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법이나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이 시대, 워킹 맘들이 갖는 남모르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 모성 보호 사업장은 천연기념물?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위반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업장 가운데 모성 보호 관련 법을 위반한 비율은 2004년 49.1%, 2005년 63.3%, 2006년 73.5%, 2007년 81.8%, 2008년 96.4%다. 대부분 안 지킨다는 얘기다.

근로기준법과 '남녀 고용 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에 포함돼 있는 모성 보호 관련 조항은 임산부의 야간 및 휴일 근로 제한, 유ㆍ사산 휴가, 산전ㆍ후 휴가 중 90일 임금 의무 지급 등이다.

모성 보호 관련 제도 중 대표격인 육아휴직의 경우 사용 직장인이 2002년 3,763명에서 2008년 2만9,145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해마다 태어나는 신생아 수와 비교했을 때 실제 이용률은 10%도 되지 않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독일이 85%, 일본이 89%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치다. 육아휴직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1년간 주당 15~30시간)가 시작됐지만 이를 활용한 사람은 단 8명에 불과했다.

반면 위반 사업장에 대한 조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임산부의 야간ㆍ휴일 근로 등 시간외근무 금지는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강력한 제재를 내릴 수 있지만 지난해 적발된 전체 8,570건 중 사법처리는 단 6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과태료나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전혀 없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 전문가 조언 "혼자 끙끙 앓다 원망만 커져…가족·동료와 함께 풀어가야"

워킹 맘들에게 회사와의 갈등은 일종의 숙명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전문가들은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가족이나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에 2,500건 정도 여성 평등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협의회장은 "직장과 가정 문제로 갈등을 겪는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문제를 회피하다 결국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며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료들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장 내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국제 교류 회사를 다니고 있는 박모(30ㆍ여)씨는 이런 점에서 100점 짜리 워킹 맘이다. 팀장인 박씨는 다음달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최근까지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박씨가 일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둘째까지 임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장 동료들의 힘이 컸다. 박씨는"아이를 갖고 잠시 일과 출산 문제로 힘들기도 했지만 주변 동료들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니 탄력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줬다"며 "일과 가정 문제가 충돌할 때는 혼자 끙끙대기보다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 지원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우현미 한국EAP협회 상담사는 "일과 가정 문제로 갈등하는 여성들이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다 보면 회사와 가정에 대한 원망만 커진다"며 "하지만 위기에 직면할수록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면서 회사 동료나 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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