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 촉망 받는 신인 강타자가 있다. 데뷔 후 두 경기 연속 홈런을 날렸다. 세 번째 경기에선 2루타에 그쳤다. 홈런을 기대했던 야구해설가들은 "타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힐난한다. 과연 합당한 평가이자 대우일까.
다소 거친 비유이지만 최동훈 감독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215만명을 열광케 했고, '타짜'로 684만명을 극장에 불러들인 그는 160억짜리 '전우치'로 평단으로부터 "최동훈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의 치고 받는 대사가 일품인 전작들보다 완성도가 많이 처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여전히 그를 택했다. 고전 판타지라는 낯선 장르로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에 맞선 '전우치'는 10일까지 434만명이 찾았다. 좌석 점유율이 높아 더 많은 관객이 들 것으로 기대된다. "나의 진정한 적은 '아바타'가 아닌 혹한"이라며 환히 웃는 최 감독을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 영화사 집 사무실에서 만났다.
-비판 기사가 많아 마음에 상처를 입었겠다.
"나답지 않다는 평가에 '그럼 난 누구지 난 뭐지' 생각했다. 그래도 다 나에게 약이 되더라. 비호의적인 기사는 참뜻을 알려고 몇 번이고 읽는다. 관객 동원도 걱정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설 연휴 지나면 다음 영화 준비 들어가는데 빨리 찍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전작과 전혀 다른 장르라 힘들지 않았나.
"나에겐 도전이었다.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한국 고전 판타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과거와 현대에 어울리면서도 재미있는 대사를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와이어 액션이 대부분이라 찍을 땐 이렇게 힘든 영화 또 있나 할 정도로 지옥 같았다. ('괴물'의)봉준호 감독이 만날 때마다 '컴퓨터 그래픽 영화 찍지 말라니까'라고 말했을 정도다. CG와 액션이 많은 영화를 찍다 보니 창의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바타'가 흥행의 최대 걸림돌인가.
"'아바타'보다 관객층이 겹치는 '셜록 홈즈'의 선전이 신경 쓰였다. '셜록 홈즈' 힘이 좀 약해지니 혹한이 찾아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다. 항상 개봉할 때면 의외의 변수가 나타난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은 조상 묘를 잘 써야 한다. 추석 때 성묘도 자주 가야 하고…(웃음)"
-대중적인 영화를 가장 잘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전엔 그런 평가가 있는지도 몰랐다. '전우치' 개봉한 뒤 특히 많이 듣고 있다. '전우치'는 나의 영화적 지평을 넓혀줬다. 내 위치는 여러 번 트랙을 돌아야 하는데 고작 한 바퀴 돈 정도에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구나, 앞으로도 영화를 잘 찍어야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
-다음 영화는 어떤 장르인가
"범죄물을 찍을 것이다. 범죄물을 준비하다 막혔을 때 '전우치'가 갑자기 내 뒷덜미를 잡았다. 난 누아르와 스릴러와 소동극을 좋아한다. 그 세 가지 모두가 들어 있는 게 범죄물이다. 범죄자들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인간의 희로애락이 잘 표현된다. 멜로 영화는 보는 것만 좋아한다. 로맨틱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애로가 많아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한다. 원작이 따로 있는 '타짜 2'는 창작의 기쁨보다 노동의 고통이 커 포기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쓴 '전우치 '는 그 반대라서 2편을 꼭 만들어 보고 싶다."
-항상 영화의 템포를 강조하는데 '전우치'는 어떤 템포인가.
"물이 계곡에서 출발해 급격히 흘러가다 넓고 완만한 지점을 만나 천천히 흘러간 뒤 갑자기 폭포를 만나는 템포로 그리고 싶었다. 전우치는 이야기 구조보다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있으니 어울리는 템포라 생각했다. 7개월 동안 후반 작업하며 '전우치'를 100번 넘게 봤다. 이상하게도 내 스스로 이 영화에 열광한다. 마치 소년이 된 듯하다. '전우치'를 만든 3년 동안 힘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난 행복했다."
-'박쥐'의 안수현 프로듀서가 아내다. 유명 영화제 진출 꿈은 꾸나.
"내겐 예술적 자의식이 전혀 없다. 유명 영화제 돌고픈 욕심도 없다. 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어떻게 하면 무지막지하게 재미있게 만들까 고민한다. 사실 조그만 영화제들도 갈만 하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프랑스 코냑국제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스릴러 전문 영화제인데 심사위원이 경찰들이다. 내게 영화제는 딱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해외 배급 발판이거나 영화 찍느라 고생했다는 감독에 대한 보너스다. 난 아무래도 관객 반응이 더 궁금하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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