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는 속담처럼 24절기가 실제 날씨와 맞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격차가 최근 10년 사이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驚蟄ㆍ3월 6일) 때는 이미 낮 최고기온이 10도를 오르내리는 봄날이어서 '뒷북 절기'가 따로 없고,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ㆍ10월 23일)이나 첫 눈이 온다는 소설(小雪ㆍ11월 22일) 때는 서리나 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때 이른 절기'가 됐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기온이 상승해 봄은 빨리 오고, 겨울은 늦어진 탓이다.
여름 절기도 마찬가지다. '염소 뿔도 녹인다'는 가장 무더운 절기가 대서(大暑ㆍ7월 23일)라지만, 지난 90년간 한반도에서 가장 무더웠던 날은 8월 10~11일(최고기온 평균 30.8도)로 입추(立秋ㆍ8월 8일)마저 지났을 때다.
국립기상연구소가 11일 발간한 '기후변화 입춘에서 대한까지'에 따르면, 한반도 24절기 평균기온은 과거(1919~1948년)에 비해 최근 10년(1999~2008년) 사이 절기에 따라 0.3도가 낮아지거나 최고 3.3도가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봄 가을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의 평균기온이 10년 사이 대부분 2~3도 가까이 상승해 절기와 실제 날씨와 19일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빨라진 봄, 절기 믿었다간 뒷북 대응
경칩의 평균기온은 과거 30년간(1919~1948) 2.8도였으나 최근 10년간은 4.0도로 1.2도 상승했다. 평균기온 2.8도는 지금 날씨로는 2월 15일께인데 10년 사이 경칩이 19일이나 앞당겨진 셈이다.
경칩에 앞선 절기인 우수(雨水ㆍ2월 19일)도 대표적인 '늑장 절기'가 됐다.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한다는 시기인데, 평균기온이 과거 0.5도에서 최근 3.8도로 무려 3.3도나 올랐다. 예전 우수 때는 눈과 비가 비슷한 정도로 내렸지만, 이젠 대부분 비만 내리게 된 것이다. .
화창한 봄 날씨가 펼쳐져 봄 농사를 시작한다는 청명(淸明ㆍ4월 5일) 역시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게으른 농사꾼이 되기 십상이다. 청명의 평균기온은 과거 8.6도에서 최근 11.2도로 올랐는데, 과거 기온에서 농사를 시작하려면 보름이나 앞선 3월 21일에 시작해야 한다.
촉촉한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절기인 곡우(穀雨ㆍ4월 20일)도 이젠 옛말이다. 과거 30년에 비해 비가 내리지 않는 해가 더욱 늘어나고 있는데, 곡우 때 강수량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2.3~9.3mm 증가했다. 어떤 해는 봄 가뭄이 들다가 어떤 해는 폭우가 쏟아진다는 얘기로 변덕스런 봄 날씨를 대표하는 절기가 된 셈이다.
늦게 오는 추위, 때 이른 설레발
봄에 해당하는 절기들이 한발씩 늦어 문제라면, 가을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들은 너무 일러 탈이다. 밤에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인 상강은 과거 평균기온이 13.1도에서 최근 14.7도로 1.6도 상승했다. 과거 상강 전에 첫 서리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 대부분 상강 후에 서리를 볼 수 있다.
첫눈도 마찬가지다. 첫눈이 내리는 소설의 평균기온은 과거 7.0도에서 최근 8.0도로 1도 상승했으며 첫눈이 내린 시기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소설 이후로 늦어졌다.
가장 많은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ㆍ12월 7일)도 대표적인'양치기 소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시기는 1월이다. 서울은 1월초와 1월말, 인천은 1월말, 강릉은 1월말에서 2월초 최대 강설량을 보인다.
실제 대설과는 한 달에서 두 달 가량 차이가 나는 것이다. 국립기상연구소 백희정 연구관은 "대설은 눈이 많이 오는 시기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는 시기로 보면 된다"며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전반적으로 가을과 겨울이 오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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