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이 도졌다. 우리나라 외환시장 특유의 '롤러코스터 신드롬'이다. 오를 때 가장 가파르게 오르고, 내려갈 때도 수직낙하는 모습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2010년 벽두부터 거침없이 추락하던 원ㆍ달러환율은 11일엔 낙폭을 더 키웠다. 올 들어서만 원화의 절상률은 4%에 달한다.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호주(3.4%) 뉴질랜드(2.1%) 대만(1.1%) 태국(0.6%) 싱가포르(0.5%) 등 다른 통화에 비하면 절상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평가다.
원ㆍ달러환율은 올해 들어 6거래일 만에 50원가까이 하락(1,164.5원→1,119.8원)했으며, 특히 11일엔 10원이상 빠졌고 원ㆍ엔 환율은 50원 이상(1,264.66원→1,214.27원) 곤두박질쳤다.
예견된 재앙
원ㆍ달러환율 급락은 최근 "원화를 사라"는 해외 투자은행들의 권고가 잇따르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 지난해 브라질 헤알화 랠리를 점친 BNP파리바는 최근 "올해는 헤알화 랠리가 끝나고 한국과 인도 통화의 랠리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BNP파리바는 올해 원화절상률이 무려 11%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 예측대로라면 환율은 1,000원선도 위협할 수 있다. BNP파리바 외에 소시에떼제네랄, 스탠다드차타드 등 외국계 은행들도 잇따라 원화 강세를 점치고 있는 상태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올해 한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른데다 ▦재정도 건실하고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ㆍ자본수지 흑자를 기록해 700억달러에 이르는 달러가 유입된 데 이어 올해도 150억~20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으로 돌아갔음에도, 유독 환율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외국인들 눈엔 '원화=저평가'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태다.
쏠림현상
환율의 방향이 한쪽으로 점쳐졌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역외투기세력.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언제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다.
당국은 이번 환율급락에도 역외세력들의 힘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이자, 역외선물환(NDF) 시장참가자들이 투기적으로 '원화 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것.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이날 원ㆍ달러환율 1,120원선이 무너지자 "역외의 투기성 거래로 환율이 펀더멘털과 괴리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참가자들도 수급과 펀더멘털을 고려치 않고 달러매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역외세력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 당국자는 "NDF시장 참가자들의 투기적 거래를 바로 잡는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마땅한 수단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날 외환당국은 시장개입에 나섰지만, 낙폭을 줄이는데 만족해야 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개입을 해도 추세를 바꾸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차익실현 기회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외환시장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선 정부가 가능한 범위에서 달러수급을 관리하고 단기 투기자본(핫머니)이나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단기외채 규제 등 외환시장 관리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선임연구원은 "국내 외환시장 거래 규모는 작은데 대부분을 역외와 외은 지점 등 외국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정부가 공기업의 해외차입을 자제시키거나 외은 지점의 단기외채, 증시의 핫머니 등을 규제하는 등 쏠림 현상 막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은 어디인가
향후 환율방향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외국계 기관처럼 가파른 원화절상을 점치는 쪽도 있지만, 단기변동폭이 워낙 커 곧 조정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견해도 많다. 다만, 1,100원 붕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ㆍ달러 환율의 레벨이 지난해 4분기 1,150~1,200원 사이에서 1,100~1,150원 사이로 내려온 것 같다"며 "1,100원까지 내려갈 수 있지만 이후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있어 현재의 일방적인 추세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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