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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17> 성군(聖君)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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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17> 성군(聖君) 세종

입력
2010.01.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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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 세종 동상이 안치되었다. 그러면 세종은 어떤 사람인가?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본래 왕이 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자는 장자인 양령대군이었다.

그런데 양령대군은 자기와 가까웠던 외삼촌들이 태종에 의해 무참하게 제거되는 것을 보고 반발했다. 이에 태종은 양령대군이 어리(於里)라는 늙은 대신의 첩과 놀아난 것을 계기로 세자를 교체했다.

셋째 충령대군을 세자로 삼고 곧 왕위까지 물려주었다. 양령대군이 충령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태종은 본래 스스로를 창업군주라고 자처하고, 후계자는 자기가 세운 마스터플랜을 성실히 수행할 수성군주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태종은 세종에게 정권만 넘겨주고 병권은 넘겨주지 않았다. 험한 일은 자기가 도맡아 하고, 세종은 성군으로서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정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하고, 세종의 외척인 심온(沈溫) 등을 일망타진했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해 우수한 인재들을 모았다. 그리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국가의 예악제도를 정비하며, 과학을 진흥시켜 부국강병 정책을 썼다. 군현제를 개편하고, 4군6진을 개척하며, 세금제도를 정비했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국역사업도 벌였다. 그리하여 훌륭한 세종대의 황금문화를 이룩했다. 이러한 업적은 전적으로 태종의 마스터플랜을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신중하고, 조심성 있고, 인내심이 강하며 끈기가 있었다. 세종은 특히 기억력이 비상했다. 그런데다가 공부벌레였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병이 생겨났다. 더구나 세종은 육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뇨병 풍질 안질 각기병 임질 등 뭍 병이 침노했다. 특히 안질이 심해 세종 19년 이후에는 왼쪽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웠다.

반면에 세종은 말솜씨가 좋고, 논리적이며,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고집도 세었다. 그리하여 하고자 하는 일은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그러다 보니 신료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훈민정음 창제, 내불당 설치, 세자의 대리청정 등이 그 예이다.

세종은 정치적인 수완도 있었다.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경연에 열심히 참여해 조신들과 토론을 통해 국정을 운영했는데 무리한 결정을 하지 않았다.

심한 경우는 국민투표까지 부쳐 그 결과를 보고 정책을 수립했다.(공법) 인재를 등용할 때는 신분에 구애되지 않았다.(장영실) 훈민정음도 신하들이 반대하자 궁중에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환관들을 데리고 창제했다.

그리고 그의 정책은 실용적이요 현실적이었다. 태종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양령대군을 우대했으며, 백성들을 극진히 사랑했다. 이러한 업적이 세종으로 하여금 오늘날 성왕이 되게 한 것이다.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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