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범죄로 한국과 미국에서 이중처벌을 받은 국내 기업인 정모(45)씨 사건(한국일보 1월11일자 10면)과 관련해 미 수사당국이 정씨를 미국으로 유인해 체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사국 간 상호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는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는 뚜렷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어 '편법체포 의혹'이 일고 있다.
11일 정씨 가족 등에 따르면 국내 S사 대표인 정씨는 2008년 11월 상순 미 육ㆍ공군교역처(AAFES)로부터 "미국으로 건너오라. 재계약 논의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정씨는 주한미군이 발주한 인터넷 서비스사업 수주과정에서 AAFES 직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미국행이 꺼림칙하긴 했으나, AAFES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같은 달 18일 미국에 가게 됐다고 정씨 가족은 전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1월 19일, 미 댈러스에 있는 AAFES 본사를 찾은 정씨는 회의실 앞에서 미 공군특수수사대(AFOSI)와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사전에 AFOSI가 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씨 측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짜는 11월 14일"이라며 "정씨를 미국 현지로 유인하기 위해 재계약 얘기를 꺼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도 정씨 석방을 요청하는 항의서한을 미 법무부에 보내면서 정씨가 미국에 입국하자마자 체포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법무부 관계자는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은 두 개 국가에 걸친 뇌물사건의 경우 당사국간 상호협의를 거쳐 사건을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과의 별도 협의 없이 정씨의 사법처리를 강행한 미국에 대해 "국제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로서 정씨에 대한 이중처벌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으나, 정씨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한미협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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