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불과 5개월 여 앞두고 개최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9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을 위해 앙골라 루안다로 이동하던 토고 축구대표팀의 버스가 무장 괴한들에게 피습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세계의 시선이 남아공으로 쏠리고 있다. 이 피습으로 3명이 사망하고 선수 포함 8명이 부상함에 따라 남아공 치안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 스포츠 현장에도 테러가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세계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출전하는 데다 수 억명의 시선이 집중돼 있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싶어하는 테러 집단에게는 월드컵이 타깃으로서 안성맞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지금까지 인류 평화에 기여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펼치는 스포츠 현장까지 테러의 그림자가 엄습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스포츠와 관련한 테러가 처음은 아니다. 굳이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분파인 '검은 9월단'이 자행한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 테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센테니얼 파크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여성 관람객 1명과 터키 사진기자 1명이 숨지고 110여명이 부상당한 사례도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개최지가 확정됐던 당시부터 치안부재가 우려됐었다.
남아공은 내전이 없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이긴 하지만 치안 문제는 세계 최악 수준이다. 외교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살인은 1만8,487건으로 하루 평균 50.6건, 강도는 18만3,297건으로 하루 평균 502건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토고대표팀이 피습당한 앙골라와 근접해 있는데다 강도 사건의 절반이상이 외국인 대상이어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남아공 정부는 안전 문제에 이상이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으나 선수들이나 관광객들이 느끼는 체감지수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대회기간 중 남아공을 찾을 축구팬들은 45만명 안팎, 한국 팬들은 500~1,0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건은 앞으로 남아공뿐만 아니라 인접 국가에서 다시 한번 테러가 발생한다면 잔치가 돼야 할 지구촌 축구제전의 개최여부 자체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선수들의 안전을 담보해야 할 국제축구연맹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은 물론 수 백억원 대를 호가하는 특급 스타들을 보유한 잉글랜드 프리미이어리그 등 유럽의 구단들이 선수 차출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반 팬들이다. 선수들은 그나마 고급 호텔에서 묵거나 경찰의 호위를 받지만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축구팬들은 치안의 사각지대 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역대 월드컵을 돌아보면 각국 대표팀은 대략 2주전에 현지에 들어가 적응 훈련을 하기 마련인데 아프리카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캠프를 차리는데도 애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취재 환경도 제약이 따르게 된다. 현재 남아공에서 축구대표팀 전지훈련을 취재하고 있는 국내 취재진들은 대낮에도 호텔 밖 출입을 삼갈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니 개별적 취재 경쟁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4년을 기다려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들이 자칫 성적보다 신변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씁쓸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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