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 15층. 국내 첫 존엄사 시행 환자였던 '김 할머니' 주변으로 아들, 딸을 비롯한 가족 20여명이 모였다. 김씨는 이날 오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며 생명의 끈을 조금씩 놓고 있었다. 병원 측은 가족들에게 연락해 "혈압과 산소포화도, 소변량 수치 등이 위태롭다"며 "가족들이 모여 곁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정오를 넘기자 김씨의 호흡수는 가파르게 올랐다. 소변량(500㏄)도 정상수치(2,000㏄)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숨을 내쉬던 김씨는 오후 2시 57분께 조용히 숨을 멈췄다. 김씨의 가족들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기도를 올리며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모든 치료가 중단됐다.
국내 첫 존엄사 시행 대상이었던 김 할머니의 마지막은 이처럼 엄숙하면서도 평화로웠다. 시신은 이 병원 장례식장 16호실에 안치됐다. 맏사위 심치성(50)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하고 마음 속 든든한 기둥도 무너졌다"며 눈물을 삼켰다.
2008년 2월 이 병원에 입원해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다가 의식불명이 된 지 692일 만이다. 김씨는 입원 사흘째 조직검사 도중 과다출혈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같은 해 5월 가족들은 김씨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및 본안 소송과 병원 측의 의료 과실 여부가 없는지를 따지기 위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가처분 신청은 2008년 7월 기각됐지만, 같은 해 11월 1심 재판부는 김 할머니의 '자기결정권'(평소 의사표시)을 존중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도 지난해 2월 같은 결정을 내렸고, 5월 대법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23일 김씨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하지만 곧 숨이 멈출 것이라는 의료진들의 예측과 달리 김씨는 장기간 생존했다. 이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연명치료 중단의 범위가 인공호흡기 제거에 한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영양공급과 항생제 투여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처치도 모두 포함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게 됐다.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은 "대법원 판결은 인공호흡기만 제거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치료는 다 했다"며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소송 당시 의료진들이 인공호흡기만 떼더라도 숨이 멈출 것"이라고 얘기해 "영양공급이나 항생제 투여에 대한 고려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장례는 소박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11일 오전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마친 뒤 오후3시께 입관예배를 거쳐 12일 발인할 예정이다. 김씨는 5년 전 같은 날 호흡기 질환으로 숨을 거둔 남편이 묻힌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함께 안치돼 영면에 들어간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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