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無言)의 탐색전이었다. 10년여 만에 금융통화위원회를 찾은 정부도, 이를 맞은 한국은행도 서로 말을 아꼈지만 대면 자체로도 긴장감은 팽팽했다.
등장 자체로도 조기금리인상에 반대하는 '암묵적인 신호'가 되고, 이로 인해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을 불거질 것임은 정부도 충분히 예상했던 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런 '압력'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앞으로 행동을 보고 평가해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8일 오전 '열석(列席=출석ㆍ배석과 비슷한 개념) 발언권' 행사를 위해 서울 남대문로 한은을 찾은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가장 먼저 맞은 건 정부규탄 시위 중이던 금융노조와 한은 직원들.
이들은 한 때 허 차관의 승용차를 막아서기도 했지만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배경태 한은 노조위원장은 "법에 보장된 권한이어서 참석을 막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은 부총재와 짧은 면담 후 금통위 회의실에 들어선 허 차관에게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허 차관은 "통화정책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다" "소통을 위해 왔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불거진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논란을 진화시키려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허 차관의 '압력성'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허 차관이 '첫 참석이니 잘 부탁한다'는 인사만 했을 뿐 나머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회의 후 기자회견에 나선 이성태 총재 역시 말을 아꼈다. 열석발언권과 관련한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더 할 말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평소 회견 내용과 관계없이 밝았던 표정도 이날은 회견 내내 평소보다 어두웠다. 지난달 회견 때 '헬리콥터' '문(출구)' '수평선' 등 갖가지 비유까지 동원하며 한층 강한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던 활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총재는 다만 뼈있는 말을 몇 마디 남겼다. 정부 인사의 참석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은 금통위원 7명의 몫이고 (정부 대표 참석도) 7명이 소화할 문제"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행동)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판단해 달라"며 결코 정부 입김에 영향 받지 않겠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향후 금리 방향과 관련해서도 튀는 발언은 삼갔지만 "지난달 말했던 출구전략이나 금리 정상화에 대한 생각에서 달라진 것도, 보탤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정부의 공격적 움직임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도 적극적 대응은 도움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다만 '행동이 중요하다'는 말은 동료 금통위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의 첫 참석이었고, 더구나 아직은 금리인상타이밍이 아닌 만큼 이날 금통위는 비교적 평온하게 끝났다는 평가. 기획재정부와 한은 모두 '탐색전'성격이 짙어보였다.
하지만 출구전략시기가 가까워올수록,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정면대결로 치달을 수 밖에 없고 금통위는 결코 평탄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게 한은 주변의 대체적 전망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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