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매쿼리 지음, 최유나 옮김/옥당 발행ㆍ612쪽ㆍ3만2,000원
1572년 9월, 잉카 제국은 멸망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의 스페인 군대가 잉카를 침략한 지 40년 만이다. 지금의 에콰도르에서 페루까지 안데스 산맥을 따라 장장 4,000㎞가 넘는 광대한 영토에 1,000만 인구를 거느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대제국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잊혀졌던 제국, 잉카의 영광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 것은 1911년 미국 탐험가 하이럼 빙엄이 안데스 산맥의 해발 2,430m 산꼭대기에 지어진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잉카 최후의 날> 은 피사로의 잉카 정복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스페인군과 잉카군의 첫 충돌부터 마지막 잉카 황제의 죽음까지 바로 눈 앞에서 보는 듯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 한번 펼치면 손에서 놓기 싫은 책이다.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 비통한 눈물과 치열한 저항의 이 장대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은 살아 숨 쉬며 다가온다. 잉카>
스페인과 잉카의 첫 전투가 벌어진 1532년 11월 16일, 아우타알파 황제가 끌고 온 잉카군은 8만명이었다. 이 대군이 단 몇 시간 만에 고작 168명의 침략자에게 도륙당했고 황제는 포로가 됐다. 그 뒤 40년간 저항이 계속됐지만 잉카는 이때 사실상 패망했다. 참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왜 그리 되었을까. 역사학자들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발을 디딜 때 따라 들어온 전염병과 잉카 황실의 내분, 잉카의 폭정에 시달리다 점령군 편에 선 부족들, 잉카에는 없던 총과 대포의 위력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이 책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예컨대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의 왕비가 온몸에 화살을 맞는 고문으로 죽어가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침략자들을 꾸짖는 모습은 숙연하기조차 하다. 스페인군에 붙잡힌 두 황제, 아우타알파와 투팍 아마루는 죽기 전 개종했다.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이 처형될 때 가톨릭 사제가 기도서를 외웠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신대륙에 들어와 신의 이름으로 야만을 자행했던 스페인과 교회의 오만함은, 두 황제의 처형 장면에서 혐오스러울 만큼 뻔뻔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자료와 균형 잡힌 시각이다. 스페인의 잉카 정복 초기 50년에 관한 기록 중 스페인어로 된 것은 50종이 넘지만 잉카 원주민이 쓴 것은 단 3개뿐이다. 자연히 왜곡이 심할 수밖에 없다. 승자의 기록 너머에 있는 잉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자 킴 매쿼리는 방대한 사료를 모으고 일일이 비교했다고 한다. 인류학자 겸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그는 페루에서 5년 간 살면서 잉카의 후예 요라족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잉카 제국의 자취를 찾아 곳곳을 탐험한 끝에 이 책을 썼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일보사 주최로 잉카 문명을 소개하는 '태양의 아들, 잉카'전이 열리고 있다(3월 28일까지). 페루에서 온 잉카 제국의 귀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면 더 좋을 전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