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철 6호선 응암역에서 역촌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변두리'라는 단어의 말맛이 느껴지는 곳이다. 돼지불백 파는 기사식당, 건재상, 카센터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는데, 거기 서부경찰서 맞은편 일식집 지하에 독특한 가게가 하나 있다. 간판도 없어 처음 찾는 이는 헤매기 십상인 작은 헌책방이다. 그 헌책방 주인장 윤성근(35)씨가 가게 이름과 같은 제목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매진 발행)이란 책을 냈다. 이상한>
책 29쪽, 윤씨는 "서른 살이 넘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고 썼다. 그가 마지막 공연을 봤다는, 고 김광석이 콘서트 때마다 들려줬다는 얘기다. "2002년이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출근하려고 신발장을 열었는데, 신발이 스무 켤레나 있는 거예요. 월급 두둑이 받아 펑펑 쓰며 살고 있었던 거죠. 갑자기 허무함이 닥쳐왔습니다. 이건 내가 바랐던 삶이 아닌데…."
으리으리한 대기업에서 IT 전문가로 대접받던 윤씨는 무작정 사표를 썼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답은 금방 나왔다. 넉넉지 않았던 어린 시절, 그는 서점에서 한 권이라도 더 공짜로 책을 읽으려고 속독법까지 터득한 책벌레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부터 도스토예프스키까지, 그의 머릿속엔 셀 수 없는 책이 쌓여 있었다.
"처음엔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새 책보다는 억척스레 살아남은 책, 없어져선 안 될 책들에 더 매력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헌책방 점원으로 다시 취직을 하고, 결국 나만의 책방을 차리게 됐죠."
그렇게 차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여느 헌책방과 다르다. 책꽂이가 차지하는 면적이 크지도 않고 학습참고서, 자기계발서 등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읽어본 책만 판다"는 윤씨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또 이 책방은 지역의 시민운동가들, 대안학교 학생들, 그저 책이 좋은 평범한 이웃들에게 공부방이자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손때 묻은 책을 통해 만들어가는, 작지만 행복한 코뮌(commune).
"독서의 가장 큰 미덕은 겸손인 것 같습니다. 지식을 쌓아 아는 척할 거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책 속의 내용에 대해, 책을 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좀 더 겸허하게 다가설 수 있다면 책을 읽은 보람이 있겠지요."
유상호 기자 shy@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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