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발행ㆍ376쪽ㆍ1만원
소설가 박진규(33)씨는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에서 서울을 무대 삼아 한 가족 네 여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올림픽의 해였던 1988년부터 아직 오지 않은 2023년까지, 압축적 근대화의 공간에서 서울내기 그녀들은 주체못할 욕망과 기구한 운명 속에 살아간다. 등단작이자 2005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수상한 식모들> 에서 보여준 대로, 박씨는 기발한 상상력과 걸쭉한 입담으로 흥미로운 '도시의 욕망사'를 펼쳐 보인다. 부유층의 위선을 까발린 등단작에 이어, 이번 소설은 그의 '한국사회 탐구' 2편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수상한>
건축업자인 아버지의 혼외 관계로 태어난 소녀 미령은 엄마가 음독자살한 1988년 상봉동 집을 떠나 강남에 있는 친부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이곳의 세 여자는 범상치 않다. 계모 명옥은 미령을 거두는 대가라며 그녀에게 치매 환자인 시누이 바구미 여사의 수발을 요구한다. 명옥에게 시누이는 수익 좋은 투자처를 점지해주는 무당 같은 존재다. 미령의 이복자매 신혜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수재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가족과도 소통하지 않는다.
어딘가 비뚤어진 모습으로 가족의 연을 맺은 이 네 여자가 겪는 불화와 고통의 삶을 소설은 차분하게 서술한다. 바구미 여사는 미령에게 생쌀 다섯 알을 남기고 세상을 뜨고, 미령은 계모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다. 명옥은 잇따라 실패하는 남편의 사업자금을 대느라 고생하고, 신혜는 휴거를 믿는 집단에 휘말린다. 그들의 삶은 서울올림픽, 세기말의 혼란, 2002년 한일월드컵 그리고 2012년 대지진 등 실제 혹은 가상의 서울의 역사와 맞물리며 파열음을 낸다.
모녀들은 끝내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가족은 신산한 삶을 위무하는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모두 함께'라는 말은 지나간 시절의 헛헛한 농담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아무도 도시의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272쪽) 작가는 과거와 미래, 리얼리티와 환상을 적절히 배합하면서 문명의 욕망이 초래한 한 비극적 가족사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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