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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가 찾은 '희망 2010'] <4> 지역감정 눅이는 영호남 교류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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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가 찾은 '희망 2010'] <4> 지역감정 눅이는 영호남 교류학생들

입력
2010.01.0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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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표 받아라. 눈도 많이 왔는데, 고마 단디 가라이. 다음에 또 놀러 오고. 그라고 이건 용돈이다. 가다 뭐 좀 사 묵으라.""아, 아니에요.""어허이, 어른이 주는 건 받는 기다."

4일 대구 고속버스터미널. 경북대에 재학중인 김재영(24)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배웅하러 굳이 터미널까지 나와서는 용돈을 주겠다며 성화였다. 벌써 며느리라도 생긴 듯 부산을 떠는 부친이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그토록 교제를 반대했던 것을 떠올린 김씨는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김씨의 여자친구는 전남 광주에 사는 전남대생 소나리(24)씨. 지난해 영호남 학생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김씨가 1년 동안 광주에 머물며 전남대에서 공부하면서 만나게 된 '호남 아가씨'다.

김씨로서는 여자친구까지 생긴, 뿌듯한 '광주 유학'이었지만 전남대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첫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아들이 자꾸 쳐다 보는기라예. 우리 학교에서 같이 간 행님하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해쌌는 게 신기했는갑지예. 그래 자꾸 쳐다보믄 지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아입니꺼."

김씨와 함께 전남대에서 머문 경북대생은 40명. 처음에는 전남대생들과 어울리기 서먹서먹해 유학생끼리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역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간 장벽이 놓여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었다. 김씨는 그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교류학생으로 온 만큼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직접 영어스터디를 꾸려 친구들을 모았고, 무예타이 도장도 다니면서 취미가 같은 친구들을 만나갔다. 지역감정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장벽도 아니라는 게 지난 1년 김씨가 얻은 결론이다.

지난 6일 광주와 대구에서, 지난해 경북대와 전남대간 학생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각각 만났다. 이들은 지난 1년간의 생활을 통해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스킨십을 더욱 넓혀나가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면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들이 영호남 학생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김정일(22ㆍ경북대)씨는 "지역감정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제적 격차 때문에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던 김씨는 2008년 유시민 전 장관이 진행한 강의에서 "광주의 지역GDP가 대구보다 높지만, 광주 시민들은 여전히 대구 쪽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데, 보다 복잡한 문화적ㆍ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배경에 궁금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호남 교환 학생 생활은 쉽지 않았다. 대구에서 지난 1년을 보낸 전남대생 최우선(25ㆍ여)씨는 "3년 전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더 어려웠다"며 "중국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뭐 불편한 거 없냐'며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는데, 무엇을 바란 건 아니지만 경북대 학생들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광주로 간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김재영씨는 광주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에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택시에서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마는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먼저 마음을 열고 조금만 더 다가가면, 금세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는 게 이들의 경험담이다. 박효택(26ㆍ경북대)씨는 "20대들도 지역감정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윗세대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며 "서로 잘 몰라서 경계하는 측면이 큰 것 같은데, 술 한 잔 먹고 놀면 금방 친구가 된다"고 말했다.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지역감정 문제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김정일씨는 전남대에서 배우면서 지역감정을 해결하기 위한 학내 모임에 가입해 5ㆍ18묘지를 참배하고 광주 지역사도 공부했다.

김씨는"1년간 광주 경험을 통해 영호남 지역간의 오랜 역사적 갈등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며 "대구에 돌아왔지만 내 주변부터 5ㆍ18 등 광주의 역사를 알리는 일을 계속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로 공유하는 경험이 적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영호남이 공동체적 경험을 가져야 하는데, 젊은 학생들의 교류가 그런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상대지역 사람이면 결혼 다시 생각? 아니오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의 대학생 청렴홍보단으로 활동하는 전남대 여대생 4명은 엉뚱한 앙케트 조사를 실시했다. 스스로를 '깨순이'(깨끗하고 순수한 이 세상 만들기)팀이라 부른 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짬을 내서 모교와 부산대를 각각 찾아 교내 한복판에 커다란 설문조사 피켓을 설치했다.

'내 배우자가 영남(호남)지역 사람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등 4개의 질문을 적어놓고'예/아니오'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는 방식이었는데, 통계적 의미를 떠나 현재 영호남 젊은이들의 지역감정에 대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결과는 '여전히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였다. 하지만, 설문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은 자신들은 지역감정과 관련된 편견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항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과 영남은 아직도 지역감정이 존재한다'는 질문에 전남대 학생의 경우 '예(54명)' 라는 응답이 '아니오(24명)' 보다 2배 가량 많았다. 부산대는 더욱 차이가 커 '예(47명)'가 '아니오(16명)'에 비해 3배 많았다. 양쪽 학생들 모두 지역감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별 지역감정을 묻는 질문에서는 답변이 뒤바뀌었다. '투표시 단지 후보자 출생지 때문에 편견을 가진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전남대 경우 '예(16명)'보다 '아니오(62명)'라는 답변이 월등히 많았다. 부산대도 '예(17명)'보다 '아니오(35명)'가 2배 가량 높았다.

'내 배우자가 상대지역 사람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겠냐'는 질문에도 학생들은 월등히 '아니오'라는 답변에 손을 들었다. 전남대는 '예'라는 답변이 13명, '아니오'가 65명이었고, 부산대는 '예'가 16명, '아니오'가 63명이었다. '다른(상대)지역에 가면 사투리가 나오지 않게 기를 쓰고 막느냐'는 질문에도 전남대는 '예'라는 답변이 9명에 불과한 반면, '아니오'는 66명이었다. 부산대는 '예'가 16명, '아니오'가 46명이었다.

박철현기자

■ 현장에서

● 출신지 따라 정치성향 재단 씁쓸했던 기억 더는 없길…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1999년 대학에 입학해 상경했다. 우연인지 절친했던 룸메이트도, 가장 아끼던 선후배, 동기들도 하나같이 경상도 출신이었다. 힘겨운 타지 생활을 한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그들과는 말이 잘 통했다.

지역감정과 관련된 해묵은 경험담을 굳이 꺼내 금을 긋고 싶은 생각은 애초 없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정치적 이슈를 꺼내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금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욕하던 녀석이 "아, 너 광주지"라며 나에게 미안해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출신지에 따라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는 것 같아 씁쓸해 한마디 했다. "난 양쪽 다 아니야."

선거 때만 되면 지역별로 선명하게 갈리는 투표 결과에 환멸을 느끼는 이라면 굳이 '지역감정'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감정에 기생하는 구태 정치가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박철현 기자

● "난 지역감정 무관" 믿었는데 어느새 사투리 감추는 자신에…

6일 오전 광주역 광장. 길을 묻는데 뜻밖에 표준어가 튀어나왔다. "저기요, 전남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요'자만 붙여 말끝을 올리는 우스운 표준어. 속으로 웃음이 났다.

광주는 처음이다. 경남에서 나고 자란 내게 광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버스에서 간간이 스쳐가는 차창 밖 풍경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나는 광주에 대한 합리적 지식이 있다고 믿어왔던 것 같다.

지역감정도 마찬가지다. 평소 난 지역감정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사투리를 감추려는 건 경상도 출신이라 혹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사투리에 따른 이해를 따져오면서도 짐짓 나는 무관한 채 해왔던 거다.

취재를 하는 동안 거침없이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 내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영호남의 관계가 더 건강해지지 않겠냐는 희망을 가져봤다.

이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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