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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피자, 물건너온지어언 25년… 할아버지도 즐기는 토종음식 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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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피자, 물건너온지어언 25년… 할아버지도 즐기는 토종음식 다 됐네

입력
2010.01.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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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생일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하면 뭐니뭐니해도 자장면이었다는 것을. 실제로 국내 외식업계의 대다수가 중국음식점이던 때였다. 자장면에 길들여진 어린 입맛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건 바로 피자였다. 85년 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피자헛 1호점이 문을 열면서 견고했던 중국집의 아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국 브랜드 피자가 국내에 처음 상륙한지 어느덧 25년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피자도 못지않은 변화를 겪었다.

미국식 피자를 한국식으로

피자헛 1호점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피자는 6가지였다. 가격은 2,000원에서 1만1,300원까지. 모두 미국식 피자를 그대로 가져온 제품이었지만, 서양 요리를 언제든지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채로웠다.

그러나 한계는 명백했다. 담백하고 얼큰한 한식에 길들여진 우리네 입맛을 기름진 미국식 피자가 사로잡기엔 역부족이었다. 피자헛에 이어 국내 시장 문을 두드린 다른 외국 피자 브랜드들도 피자를 한국식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90년 문을 연 미스터피자는 까다로운 20∼30대 여심(女心)을 대상으로 품평회를 열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2년 뒤 탄생한 제품이 바로 포테이토 피자. 도우(피자의 납작한 빵 부분) 위에 얹는 토핑으로 햄이나 소시지 대신 과감하게 감자를 선택한 것이다. 말랑하고 포슬포슬한 식감이 피자 치즈의 느끼함을 달래주는 포테이토 피자는 지금까지도 피자업계의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미스터피자는 도우를 기계로 뽑지 않고 직접 손으로 때려가며 만들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쫄깃함을 더했다. 팬이 아니라 석쇠에 구워 기름기를 뺀 담백한 피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피자에 담긴 세계의 요리

2000년대 들어 사회는 급속도로 세계화됐고, 외식업계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여러 나라의 다채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늘면서 피자는 되레 식상해졌다.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2003년 도미노피자는 원료 단가가 높아 대부분의 피자 업체가 사용하기를 꺼리던 가리비와 새우 같은 해산물을 토핑에 처음 도입했다. 2007년부턴 아예 다른 나라의 전통 식재료나 조리기법을 피자에 가져다 담기 시작했다. 첫 제품이 타이타레 피자. 게와 새우 토마토를 갈아 만든 비스크소스와 태국 특유의 붉은색 커리소스를 듬뿍 얹었다. 이어 프랑스풍 게살프랑쉐, 독일풍 도이치휠레, 스페인풍 올라스페인이 출시되면서 지금은 피자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가장 최근 국내에 온 파파존스피자는 재료는 한국화, 매장은 세계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 본사에서 쓰는 치즈를 그대로 사용하면 염도가 높아 한국인은 짜다고 느낀다. 결국 미국 치즈 80%에 10%는 염분이 적은 이탈리아 치즈를, 나머지 10%는 한국인에게 흰색보다 익숙한 노란색 뉴질랜드 치즈를 섞어 파파존스피자 고유의 치즈를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일부 매장에서 와인과 맥주 판매를 시작했다. 다양해진 고객의 입맛에 따라 음료 선택 폭을 넓힌 것이다.

고객별 맞춤 서비스 진화

국물이 없고 손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다는 건 피자의 가장 큰 장점. 도미노피자는 여기에 '갓 구워낸 맛'이라는 장점을 더해 배달 서비스에 주력했다. 주문 후 고객이 피자가 식기 전 맛볼 수 있도록 30분 안에 배달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따끈따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 전기충전식 열선을 장착한 특수 배달가방까지 개발하면서 맞춤형 배달 문화를 선도했다.

최근 피자업계는 한 발 더 나아가 고객 맞춤형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2007년 피자헛이 이른바 '골드미스'를 비롯한 싱글족을 위해 내놓은 1인용 미니피자가 좋은 예. 지금까지 피자는 적어도 2∼3명은 모여야 찾는 메뉴였다.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싱글족이나 바쁜 직장인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피자가 크기와 가격을 확 줄여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 이순열 피자헛 한티역 점장 "20여년 전엔 김치 찾는 손님 많아 당황"

"손님이 김치나 단무지를 주문할 때,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피클밖에 없다고 하면 '그거라도 주세요' 하면서 아쉬워하는데, 괜히 제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20여년 전을 떠올리면 이순열(사진) 피자헛 한티역 점장은 당황했던 경험이 생생하다. 사실 그런 손님이 한둘이 아니었던 터라 옆 식당에 가서 얻어라도 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숱하게 했단다.

1989년 9월 피자헛에 입사한 뒤 홀 서빙과 매장 청소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이 점장은 피자헛에 가장 오래 몸담은 사람이다. 도미노피자와 미스터피자 1호점이 모두 90년 문을 열었으니 국내 브랜드 피자업계의 최장수 근무자가 바로 이 점장인 셈이다.

"입사 초기엔 외국인이나 외국을 다녀왔던 손님이 대부분이었어요. 보통사람들에게 피자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메뉴였죠. 86아시안게임이나 88서울올림픽 같은 국제행사를 거쳐온 덕분에 피자가 점점 대중적인 음식으로 변모한 것 같아요."

이 점장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도우 가장자리다. 10여년 동안 도우 가장자리는 피자를 드는 손잡이였다. 먹지 않고 남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피자헛이 96년 치즈 크러스트 피자를 도입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가장자리 안에 치즈를 넣어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낸 거에요. 그 뒤로 가장자리 위에 달콤한 고구마까지 두른 리치골드, 가장자리를 조각 내 떼어먹을 수 있게 만든 치즈바이트까지 등장했죠. 이젠 도우 가장자리에 따라 피자를 골라먹는 시대가 됐어요."

이 점장은 "97년 경제위기 이후 피자업계의 가장 큰 위기상황은 바로 지금"이라며 "매장 수를 늘려 시장을 키우기보다 메뉴 개발과 서비스 강화 같은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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