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씨네 감나무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올해도 감을 따지 않아 쪼그라들며 쭈글쭈글해진 감을 단 감나무가 겨울 풍경을 볼썽사납게 만들고 있다. 신씨는 지난해도 감나무를 버려두었다. 이유는 감나무의 감을 다 따도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웃 청년들이나 따먹게 하지." 내가 권하자 신씨의 인상이 싹 변한다. 신씨의 이웃은 인근 공단에 다니는 검은 얼굴의 외국인근로자들이다.
신씨는 그 이웃들 때문에 불안하다고 내게 귀띔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그 이웃들은 모두 착한 외국청년들이다. 재차 권하자 신씨는 화가 나서 내뱉는다. "그냥 두고 까치밥이나 하지요." 그렇게 해서 수백 개의 감을 통째로 까치밥으로 달고 있는 감나무가 우리 마을에 있다. 나는 젊은 신씨가 까치밥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까치밥은 사람이 자연에 베푸는 나눔이다. 옛사람들은 배고픈 시절에도 가을에 감을 딸 때 우듬지에 가장 좋은 감 두어 개를 남겨 두었다.
그것이 진짜 까치밥이다. 겨울이 오면 먹을 것이 없는 날짐승을 위해 감 몇 알 남겨두는 가난한 농부의 따뜻한 마음이 까치밥에 담겨 있다. 감을 따지 않는 감나무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런 감을 나는 '가짜 까치밥'으로 부른다. 그 덕에 겨울 까치들이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다보니 까치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사람의 죄다.
시인 정일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