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시간과 행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시간과 행복

입력
2010.01.07 00:11
0 0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어김없이 시간의 빠름을 새삼 절감한다. 나이들면서 왜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흘러가고 일은 더욱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시간을 분과 초로 나누어 쓰는 바람에 더 그런 것은 아닐까?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 에 니콜라이 쿠스미치라는 러시아 하급 관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어느 일요일에 자신이 앞으로 한 50년쯤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남은 기간을 우선 시간으로, 다음에는 분으로, 그리고 초로 환산하기 시작하였다.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마침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합계"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천문학적 재산을 지닌 '시간 부자'임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규칙적 생활을 하면서 일요일마다 자신의 재산을 결산했는데 몇 주 지나지 않아 믿을 수 없이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시간을 좀 절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좀더 일찍 일어나고, 세수도 후다닥 해치우고, 선 채로 차를 마시고, 달려서 관청에 가며"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일요일에 계산해보면 절약한 시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시간을 초 단위가 아니라 10년짜리로 바꿀 걸 그랬다고 후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후 그는 초 단위로 계산해 놓은 자신의 재산이 뭉텅뭉텅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저 집에서 누워만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이 우화는 우리가 시간을 쪼개면 쪼갤수록 실제 남는 시간은 더 적어진다는 현대의 문제를 잘 짚어준다. 쿠스미치가 아무리 촌음을 아껴 부지런을 떨어도 1주일의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간다. 우리 역시 바쁜 일정에 종종거리며 살아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만 하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온갖 발명품을 갖고도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대의 문제이다. 중세에는 쉬는 날이 1년에 평균 115일 가량 되어서 우리보다 훨씬 많은 여가 시간을 갖고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시간을 시, 분, 초로 나눌 필요가 없었다.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분, 초로 나누었다. 시계를 일상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생활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시간을 초 단위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만큼 더 많이 일하고 여유 시간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시계를 부숴버리거나 분과 초를 없애버리면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가능성이 별반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시간에 대한, 삶과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나을 듯하다. 행복이 무엇이고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게 행복과 별 관련이 없음은 우리의 현재 삶이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

이번 새해 덕담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작년보다 일을 조금 줄이고, 약속도 조금 덜 잡고, 목표도 확 줄이고, 시계를 멀리하고, 분이나 초 정도는 자주 무시하고 사시게. 대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한적한 길에서 자신의 내면에 잠겨보고, 친구도 더 자주 만나고, 텃밭도 가꾸고, 가끔은 산 위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그렇게 사시게. 알맞게 생산하고,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보시게.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