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은 소리없이 흐른다. 슬픔도 그렇다. 지극하면 고요하다. 그래서 더 뜨겁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지극한 슬픔을 잔잔하게 풀어가는 영화다. 지울 수 없는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던 여자가 세상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줄리엣은 여섯 살 어린 아들을 살해한 죄로 15년 간 복역하고 나온다. 여동생 레아가 언니를 마중 나와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부모의 강제로 외면해야 했지만 늘 언니를 그리워했던 레아와 달리 레아의 남편은 살인을 저지른 처형과 한집에서 지내는 것을 불편해한다. 줄리엣도 어색하게 겉돈다. 하지만 레아의 가족과 동료 미셸, 보호관찰관 포레 등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을 구해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간다. 그가 왜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는지는 마지막에 드러난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비밀을 레아에게 털어놓는 순간, 줄리엣은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줄리엣 역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연기, 특히 얼굴 표정은 잊지 못할 명연이다. 그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과 차갑고 쓸쓸한 표정이란! 눈빛과 입매만으로도 두려움, 망설임, 갈망, 분노, 외로움을 완벽하게 표현한 이 배우는 이 영화로 2009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9 영국 아카데미상과 세자르영화제, 골든글로브의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혔다. 동생 레아로 나온 엘자 질버스타인도 이 영화로 2009 세자르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몹시 섬세하고 지독하게 절제돼 있다. 감정 과잉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다. 대신 아득하게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소설 '회색 영혼'으로 르노도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필립 클로델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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