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쉬는 날 폭설이 내렸다. 저녁을 먹고 걸어서 숙소로 갔다. 인적이 드문 눈길이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나보다 앞서 발자국을 찍으며 이 눈길을 갔다. 그 사람의 발자국을 포개 밟으며 고 이청준 선생님의 소설 <눈길> 을 생각했다. 눈길>
빚으로 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어머니는 새 집주인에게 사정해 대처로 공부하러 나가는 아들에게 이 집에서 더운 밥을 해 먹이고 이사를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떠나는 날 어머니는 그 집에서 새벽부터 밥을 지어 아들을 먹였다. 그리고 읍내 차부까지 10리도 넘는 길을 어머니와 아들은 함께 걸었다. 새하얀 눈길이었다.
작가 이청준과 그 어머니
새벽차에 아들을 실어 보내고 어머니는 혼자 그 눈길을 되짚어 온다. 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아 눈길에는 여전히 어머니와 아들의 발자국만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발자국을 다시 꼭꼭 밟으며 말한다. "아들아, 부디 공부 많이 해서 너만은 좋은 세상을 보고 살아라." 이제 돌아가면 떠나야 할 집을 향해가는 그 10리 눈길을 어머니는 내내 그렇게 걷는다.
1997년쯤 <축제> 의 각색 작업을 하면서 두 달쯤 이청준 선생님을 집중적으로 뵐 수 있었다. 임권택 감독님, 이청준 선생님을 모시고 남도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때의 작업 방식은 소설과 시나리오와 영화를 한꺼번에 같이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선생님이 소설에 대해 말씀하시면 임 감독님은 시나리오에 대해 말씀하시고, 나는 매일 밤 정리를 해서 두 분께 보여드리고 또 의견을 들었다. 그러면서 임 감독님은 촬영 장소와 영화의 시각적 구상들도 함께 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내게는 문학과 영화뿐 아니라 두 어른의 살아가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 등 인생관 전반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축제>
어느 날 충청도 예산 부근을 자동차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눈발이 날렸다. 겨울이 아직 채 오지 않은 11월 중순이었다. 작은 박하사탕 만한 눈송이들이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히고는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묵묵히 차창을 보고 계시던 이청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 참 귀한 시간이네요!" 그 말씀이 사진기의 셔터처럼 그 때 그 풍경을 내 머리 속에 아주 선명하게 새겨놓았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 감독님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을 이청준 선생님의 모친 산소로 데려가셨다. 그 분에 관한 영화이니 그 분께 예를 갖추려는 의도이셨다. 4월의 어느 오후였다. 사람들이 모두 산소에 예를 마칠 무렵, 감독님은 배우 오정해에게 <칠갑산> 을 부르기를 청하셨다. 칠갑산>
오정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콩밭 매는 아낙네야…'봄 햇살은 천지에 흐드러졌는데, 멀리 쪽빛 남해 바다가 간척한 들판 너머로 보였다. 노래는 판소리로 단련된 오정해의 능란한 성대 속에서 이날 따라 구슬프게 꺾여 들었다.
우리 모두의 '어린 가슴'
노래를 듣던 이청준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서서 밭 위로 오르셨다. 그리곤 돌아서 애꿎은 콩대를 손으로 후두둑 후두둑 뜯기 시작했다. 감독님은 눈짓으로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다. 산소 바로 밑은 그 어머님이 기거하시던 집이 있었다. 선생님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돌아서서 콩대만 뜯고 계셨다.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채우네…'
지금도 나는 선생님의 소설 <눈길>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면 자꾸 이 장면이 생각난다. <눈길> 의 어머니가 <축제> 의 어머니이고 <눈길> 의 중학생 아들이 이 날 콩대를 뜯던 이청준 선생님이시다. 어디 이 분들 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어머니와 아들이 같은 마음이지 않겠는가.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이처럼 귀한 순간들을 맞는가. 눈길> 축제> 눈길> 눈길>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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