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는 불과 6억5,000만원이었다. 아무리 충무로 돈줄이 말랐다지만 저예산 영화가 어찌 추석 대목을 겨냥할 수 있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감독도 대중들은 생판 모르는 신인이었다. 국내 관객들이 가까이 다가가길 꺼리던 김기덕 감독의 문하생이었다. 게다가 시나리오의 줄기를 제공하고, 제작까지 맡고 나선 이도 김 감독이었다. 2008년 9월 개봉한 '영화는 영화다'는 그렇게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다.
성마른 예상은 빗나갔다. 기자 시사와 배급 시사가 끝난 뒤 극장들은 너도나도 상영하겠다고 나섰다. 132만명의 관객이 찾았고, 그 해 추석 극장가의 흥행 왕자로 등극했다. 대중적 성공 뒤로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호평도 나왔다. 뚝심 있는 화법을 지닌 신인 감독의 탄생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제작비 거품을 빼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켰다는 분석도 잇따랐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수상 등은 '영화는 영화다'의 예고된 반란이 가져다 준 일종의 부상이었다. 작은 영화 '영화는 영화다'는 그렇게 2008년 충무로에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 신화를 일궜다.
신화의 주역은 장훈(36) 감독이었다. 저예산 데뷔작 한편으로 충무로 중심부로 곧바로 진입한 그는 2월 4일 개봉하는 신작 '의형제'을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많은 영화인들이 그와 그의 신작에 기대감을 표하고 있는데도 그는 그저 "영화 연출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운 좋게 두 번째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의형제'는 전직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의 버림을 받은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의 기이한 우정을 그린다. 장 감독은 "남북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라 마음이 끌렸으나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관객에게 부담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70억원가량으로 전작보다 덩치를 키웠다. 배우들의 중량감도 더 커졌다. 2년 사이 달라진 장 감독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영화는 영화다'의 선 굵은 액션과 캐릭터 묘사가 시사하듯 거침 없고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신예지만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다시는 영화를 못 찍을 수 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나 다 해보자며 덤볐던 '영화는 영화다' 시절과는 매우 다르다. 규모가 크니 손해가 안 나도록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딱히 영화광을 자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직업으로 택했다. "졸업 후에도 사람에 대한 고민을 더 하고 싶은데, 거기 어울리는 분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앞으로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그러나 관객들이 보면서 고민하지 않는, 그들이 동참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지향을 위해 장 감독은 "세상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듯하다"고 했고, "아직 학생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그가 내민 무기는 의외로 젊음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감독들보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듯해요. 그래서 스스로 공부를 해가며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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