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이 심했던 '소년' 박태환의 한마디 한마디에 성숙함이 배어났다. 새해를 밝히는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 태릉의 물살을 가르는 박태환의 두 어깨에도 다시 힘이 넘쳐났다. 스무 살 여름에 겪어야 했던 처절한 실패는 박태환을 한층 성장시키는 자극제가 됐다. 그 누구보다 경인년 새해를 기다려 온 박태환(21ㆍ단국대). 그는 "2010년은 부모님을 다시 신나게 해드리는 해로 만들겠다"는 말로 신년각오를 대신했다.
▲물 속으로 돌아간 마린보이
중부지방이 '눈폭탄'을 맞은 다음날인 5일. 박태환은 발목까지 덮인 눈밭을 뚫고 묵묵하게 태릉선수촌 수영장과 숙소를 오갔다. 박태환은 "보기에는 좋을 지 몰라도 불편해 죽겠어요"라며 덤덤한 반응이다. 그만큼 훈련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박태환은 오전 오후 각 3시간씩, 하루에 1만6,000~1만7,000m를 헤엄치고 있다. 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훈련을 재개한 뒤 줄곧 이어온 박태환의 일상이다.
세상은 냉정했다. 단 한 번의 실패에 언론과 팬들은 박태환에게 등을 돌렸다. 줄곧 활기차던 수화기 속 박태환의 목소리가 잠시 차분해졌다. "연말은 부모님과 집에서 조용히 보냈어요. 저는 괜찮은데 부모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죠. 부모님 기를 다시 살려드리기 위해서라도 저 반드시 열심히 할겁니다."
▲박태환, 다시 웃다
박태환은 주위의 우려보다 빨리 충격을 털어냈다. 털털한 성격이 큰 도움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전처럼, 그는 그저 태릉선수촌의 일상을 즐기고 있다. 훈련을 마친 저녁 시간에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학교에서 제공한 개인 영어교사가 내준 숙제를 하느라 박태환의 자유시간은 언제나 분주하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재기에 성공한 뒤에 멋진 영어 인터뷰를 하고 싶은 그다.
이제 주위를 챙기는 여유도 생겼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코 앞에 둔 김연아(20ㆍ고려대) 얘기가 나오자 박태환은 "잘 해낼 거에요. 지금까지 한 것처럼만 하면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죠"라고 힘주어 말한다. "잘 해낼 거에요"라는 말. 박태환을 지켜보는 팬들이 그에게 하고픈 바로 그 말이다.
▲호주에서 피어나는 금메달 꿈
박태환은 오는 12일 호주로 1차 전지훈련을 떠난다. 11월12일 개막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남은 시간은 300여일. 호주의 명 코치 마이클 볼(48)을 전담코치로 영입한 박태환이 명예회복을 위한 힘찬 날갯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박태환은 12일부터 한달 여, 4월1일부터 세달 여 호주에서 볼 코치의 집중조련을 받을 계획이다. 이 훈련에는 노민상 경영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물리치료사와 웨이트트레이너, 국가대표 장거리 훈련파트너까지 동행한다. 대회 참가가 드물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적극적으로 대회에 나서며 실전 감각 유지에도 힘쓸 예정이다.
달라진 점은 없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와 400m, 1,500m에 똑같이 도전한다. 돌핀킥과 턴을 보완해야 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세부적인 기술과 레이스 요령도 가다듬어야 한다. 최첨단 전신수영복 착용이 전면 금지되는 올해에는 반신수영복을 고집했던 박태환이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
"힘들었던 지난해의 기억은 이미 잊은 지 오래 됐어요. 한 번 지켜봐 주세요"라고 당당히 외치는 박태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한 그의 당찬 도전장은 이미 던져졌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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