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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노는이의 '기묘한 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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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노는이의 '기묘한 가(家)?'

입력
2010.01.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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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노는이의 '기묘한 가(家)?'는 이 시대의 연극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극단이 '믹스트 미디어' 연극이라며 뭉뚱그리고 있는 무대는 이 시대, 실재라는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여러 차원의 현실이 극장 안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무대 상황 1, 무대 상황 2, 멀티스크린으로 재생되는 현실, 오른 쪽 벽에 붙어 있는 모니터, 전면 벽에 붙어 있는 액자 등이 만들어내는 각각의 현실은 동시 발생하고 충돌한다..

이야기는 폐가에 사는 이상한 가족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추방하자는 마을 사람들과 가족 간의 치열한 싸움이 주축이다. 거기에 탈옥수가 끼어들면서 무대는 걷잡을 수 없는 소동으로 치닫는다. 외부 상황은 여러 모니터 영상 등 이미지로만 전달되는 현실 무대는 한판의 게임처럼 인간에게서 이탈돼 있다.

모나리자와 대천사의 액자 그림은 부르주아의 키치로 전락한 클래식의 세계를 적절히 상징한다. 여기에다 미디어 장치를 이용, 그림 속 인물이 무대 상황에 따라 반응하도록 한다. 삼국지의 표현을 빌면 '산 미디어 기술이 죽은 고전을 불러낸' 격이다.

무대는 현실과 가상이 격렬히 버성긴다. 탈옥수의 취조실 장면에서는 형사가 마구 차고, 죄수가 쓰러지는 등의 상황이 마임으로 표현된다. 가상은 실제에 직접 반응하기도 한다. 범인이 무기징역 형을 받았다는 소식에 모나리자, 가브리엘 천사 등 그림 속 인물들이 격하게 울며 눈물을 쥐어짜는 모습에 관객들은 혼합 미디어의 사실감에 빠져든다..

이 극에서 언어란 한낱 희화의 대상일뿐이다. 탈옥수는 "더럽게 무서운 무기"를 갖고 있고, 자신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놈"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한낱 겁장이일 뿐이다. 무의미함만이 충만한 공간을 지탱하는 현실의 극장 공간은 사이버 시대에 대한 은유일 뿐이다. 마지막, 일련의 소동에 넌더리가 난 가족들이 뇌까리는 말은 의미 없음의 극치다. "아무 생각도 마라, 될대로 둬라, 시간은 지나가게 돼 있다. 물론 행복한 시간도…."

무대와 현실의 벽은 또 다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무대는 동의의 큐 사인이 없다. 주인공의 운명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그렇다고 동의의 미소도, 폭소도 없다. 웃음은 파편적이다. 뭔가 언어도단의 상황인데, 언제 웃어야 할지 그들은 헷갈린다. 삐져 나오는 킥킥댐. 24일까지 라이프시어터.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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