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갇혔던 서울의 도로망이 하루 만에 거의 회복됐다. 서울시가 제설 비상근무에 나서 밤을 새워가며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린 덕분이다. 다행히 어제는 기온은 낮았지만 햇볕이 쨍쨍해서 주요 도로는 응달진 곳을 빼고는 눈 녹은 물이 빗물처럼 흐를 정도로 폭설의 흔적은 이내 지워졌다. 관측 사상 최대의 '눈 폭탄'이 자연의 두려움을 알렸다면, 재빠르게 도로망을 회복하는 인간과 사회의 힘도 놀라웠다. 필사적 제설작업으로 손님맞이 준비가 끝난 상가지역과는 대조적으로 주택가 골목길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잇속에 움직이는 세태를 드러냈다.
■폭설은 서울의 모습을 수십 년 전으로 잠시 되돌려 놓았다. 텅 빈 도로를 버스와 택시가 드문드문 달리고,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 길게 늘어섰다. 콩나물 시루 전철을 두 차례나 그냥 보내고 겨우 탔다가 옴짝달싹할 수 없어 내릴 역을 지나쳐야 했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마구 떠밀린 탓인지 허리가 욱신거린다. 승강구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차장이, 버스 출발과 동시에 적당히 전후좌우로 차를 흔드는 운전기사의 재간에 맞추어, 배치기로 승객을 밀어 넣던 시절이 떠올라 괴로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1970년대 초인 그 당시에 이미 서울에서 집 앞의 눈을 제대로 치우는 사람은 드물었다. 싸리비나 대비로 쓸거나 삽으로 걷어내더라도 겨우 한두 사람이 지나다닐 좁다란 길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변두리 달동네 뿐만 아니라 제법 먹고 살 만했던 동네도 그랬다. 비탈길에 쌓여 사람의 발길로 다져진 눈이 반질반질하게 얼어붙으면 집집마다 연탄재를 들고 나와 집어 던졌다. 오가는 아이들은 미처 덜 깨진 연탄재를 발로 차서 부수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도 나오기 전이어서 연탄재를 발로 부수어 흩는 것은 외려 미덕이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눈이 잔뜩 쌓인 지상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낑낑대다가 문득 연탄재가 그리워졌다. 다져진 눈 위에 미끄럼 방지용으로 뿌리기에 연탄재보다 나은 게 있을까. 경비초소 난로에서 나온 연탄재 몇 장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인심이 날로 야박해져서 경비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데다 연령대도 높아졌다. 몇이서 사람 다닐 길 뚫기도 힘에 부치니 눈에 묻힌 차까지 '구조'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차를 못 빼 안달을 하면서도 제설작업에는 힘을 보태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맛보는 후진의 경험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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