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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관치(官治)가 설치는 이유

입력
2010.01.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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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ㆍ간접적인 사퇴 압력을 많이 받았다. 금융정책 당국의 집요한 협박과 주변 압박도 받았다."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정권 실세가 미는 인사가 거래소 이사장 경쟁에서 탈락한 뒤 '괘씸죄'설이 흘러나왔고, 이어 검찰의 압수수색과 감사원 감사, 금융감독원의 검사 등이 진행되면서 1년 6개월 동안 겪었던 심적 고통을 토로한 것이다.

금융권 요직은 모피아 전리품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사퇴 과정도 비슷하다. 그는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한 뒤 회장을 선출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했고, 역시 금융감독원이 나서 고유 권한인 '감독기능'이라는 칼을 휘둘렀다. 금감원은 강 행장의 사생활은 물론, 사외이사들의 비리까지 샅샅이 뒤졌다. '표적감사'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에 대한 사전검사가 통상적 절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 행장의 선임이 유력해지면서 중도 사퇴한 후보 2명의 면면을 보면 이례적으로 강도 높았던 검사의 배경이 이해된다. 두 사람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의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와 대통령 측근 실세의 인척인 공기업 사장(역시 모피아)이다.

그러고 보니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정책라인은 물론 은행연합회장, 수출입은행장, 중소기업은행장, 자산관리공사 사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도 전부 모피아다. 한동안 숨죽이던 모피아들이 금융위기 극복을 빌미로 끼리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며 정부 고위직과 금융권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한 이유를 알겠다.

정부의 금융 감독 권한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금융회사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철저한 감독은 필요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입장에서 감독 당국의 위험 예방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치(官治)는 어디까지나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멈춰야 한다. 경제관료들의 '노후 보장'을 위한 은행 길들이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무리수가 버젓이 자행되는 데는 현 정권의 무원칙한 인사에도 책임이 있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인사에 관한 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측근인사' '코드인사' 논란에 시달렸다. 진실게임의 향방이 드러나려면 시간이 좀더 걸리겠지만, 공기업 기관장 인사에서 뇌물 청탁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인사 난맥상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선진화 개혁'을 부르짖었다. 민간 자율을 신장할 수 있도록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중용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특히 '공기업 선진화' '금융 선진화'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경제 살리기 정책의 핵심 키워드이다. 하지만 출범 초기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 '형님인사' 'S(서울시)라인 인사'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으면서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다.

임기제 취지를 무시한 채 전 정권에서 기용된 공기업 기관장들을 몰아내더니, 그 자리에 대선 때 도움을 준 인물이나 학연, 공직 등으로 인연을 맺은 인사들을 대거 고용했다. 총선 낙천ㆍ낙선 인사들에게는 6개월간 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공염불에 그쳤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시어머니보다 한 술 더 뜨는 며느리 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관치의 부활

공기업은 정부가 임면권을 쥐고 있으니 '형님인사''S라인인사' 등의 비판은 할 수 있을지언정, 절차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가 단 1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금융회사의 CEO 선임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하나.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공권력까지 동원하고, '감독'의 탈을 쓴 채 시장의 노른자위를 차지하러 기웃거리는 관료들을 위해 관치가 기능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고 공기업 선진화, 금융 선진화를 부르짖고 있는 2010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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