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다니던 시골 교회는 본래 일본인들의 진자(神社)였습니다. 거의 모든 진자가 그렇듯이 300여 계단을 올라 닿는 산중턱에 있었는데 둥근 나무기둥에다 특유의 처마의 선, 마당에 깔린 작은 조약돌과 우물도 진자의 진자다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린 눈에도 이 '건물'에서 예배를 본다는 것은 사뭇 어색했습니다. 없애버려야 할 건데 왜 이것을 잘 다듬어 사용하는지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진자가 교회가 된 기적'에 대한 감사를 늘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회상컨대 그 경험은 상실과 회복에 대한, 그리고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인식과 신념을 저로 하여금 지니도록 해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고비를 닥칠 때마다 그 '교회'는 제게 변화 가능성 또는 기적의 현실성에 대한 상징이었고, 현실과 이상이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현명함의 상징으로 떠오르곤 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저는 또 한 번 '교회가 된 진자'와 만났습니다. 학교 건물은 일제가 지은 그대로였습니다. 책상이나 도서관의 집기들에는 일제시대의 학교 이름이 화인(火印)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흔적이었고, 지워 마땅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아직도 치욕을 치욕으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못난 모습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여전한 '사물의 지속'탓인지요. 저는 지금도 그 학교를 '성대(城大)'라고 부르기를 좋아한, 그런 채 그 뒤 이 나라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선생님과 몇몇 동문을 기억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학교에는 진자가 교회가 된 기적을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은근하게 옛 명성을 누리는 어떤 분위기가 바람처럼 스미어 있었습니다.
저는 지사(志士)도 못되었지만 아예 이런 일에 무관심한 사람도 되지 못했습니다. 속이 끓었지만 속만 그랬습니다. 생존을 버텨야 하는 삶은 그런 생각을 조금은 사치스럽다고 스스로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참 못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골교회 목사님 설교처럼 저를 위로해준 것이 있었습니다. 학교 중앙도서관 벽에 걸려 있던 두 글귀였는데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만리 풍사하, 오백년 현자생(九萬里 風斯下, 五百年 賢者生).'
마구 번역하면 '바람을 아래 둘 만큼 아득히 높이 날면, 그처럼 이 땅의 긴 세월을 조망하고 감당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말이 <장자(莊子)> 의 첫머리 물고기(鯤)가 새(鵬)가 된 이야기에 이어 그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을 묘사한 데서 비롯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뒤의 일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말 때문에 제 속 끓임을 제법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자(莊子)>
사실, 삶은 언제나 느긋하지도 않고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쥔 채 부닥친 현실을 파고 뒤지고 내달려도 모자랍니다. 삶은 모질고 아프고 혹독하기 때문입니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승패를 초연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또 그런 대로 삶이 이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현실적이기를 스스로 의도합니다. 지금-여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지금-여기에서 결판을 내야 합니다. 지금-여기에서 누릴 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삶이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지금-여기를 벗어난 삶은 이미 삶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삶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이 날자'는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긴 조망'을 가지자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잠깐만이라도 멈추어 생각을 해보자고 이야기하면 '공자님 말씀하고 있네!'하는 비웃음이 메아리 칩니다. 이 표현은 이제까지 그러한 높은 비상과 긴 조망의 요청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아 무용했다는 판단에 근거한 웅변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이 전하는 탈레스(Thales)의 일화는 이러한 웅변의 압권입니다. 하늘의 별을 살피다 웅덩이에 빠져 하녀로부터 '자기 발 밑도 보지 못하면서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다니!'하는 빈정거림을 들었다는 일화가 그것입니다. 그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때가 기원전 4백 년인 것을 감안하면, 인간의 삶은 아득한 때부터 그래왔습니다. 지금-여기에의 집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가 그처럼 절대적이라고 여기는 '지금-여기'라는 것, 그것 자체입니다. 지금-여기는 따로 떨어진 어떤 개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긴 연속의 어떤 마디입니다. 그러므로 따로 떼어낸 사물 같은 것으로 '지금-여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지난 세월도 담겨있고, 오지 않은 세월도 안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제를 지운 '지금-여기'도, 내일을 배제한 '지금-여기'도, 실은 환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여기를 준거로 어제를 조작하는 일도, 내일을 볼모로 지금-여기를 정당화하는 일도 망상이기는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높이 올라 멀리서 사물을 온 모습으로 살피려 하지 않고 지금-여기에만 몰입하는 것은 그 순수하고 정직한 현실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은 환상에의 함몰입니다. 그것은 자기 기만의 모습입니다. 아니면 의도적인 협잡, 곧 옳지 않은 짓으로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
물고기가 새가 되어 마침내 아득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장자의 이야기는 그것이 지금-여기에서의 현존이 어떠해야 하리라는 것을 기막히게 보여줍니다. 그것에 대구(對句)하여 '오백년 현자생'을 읊은 선인의 진정이 새삼 저리게 전해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가장 절박한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높이, 그리고 길게'보는 눈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탈레스의 일화가 함축하는 불안 또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가장 비열할 때 이상론 자가 되기도 하고, 가장 무책임할 때 드높은 가치를 운위하기도 하며, 혼란의 극에서 난데없이 초연을 읊조리기도 합니다. 그것 또한 치유될 수 없는 인간의 질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탈레스는 이오니아 도시들의 연합을 촉진한 현실정치가였고, 일식을 예언했으며, 바다에 떠있는 배의 거리도 측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여기를 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득한 하늘을 난다. 그리고 아득한 하늘을 나는 사람은 지금-여기를 참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시골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왜 이리 그리운지요. 학교 도서관에 붙어 있던 글귀가 왜 이리 새삼 아쉬운지요.
삼가 새해 다복하시길 빌면서 '멀리, 그리고 깊이'를 마감합니다.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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