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정말 달라질 수 없나.'
수없이 반복된 이 질문이 새해 벽두에 또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도 어김없이 몸싸움, 말싸움의 파행으로 끝나자 이제는 국회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갈등의 축은 이념, 세대, 지역, 계층, 다문화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갈등 해소의 마당이 돼야 할 국회가 오히려 싸움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국회의 제자리 찾기를 주문했다.
정초에 오가는 정담(政談) 중에도 "정치에서도 선거, 정치자금 등 다른 분야는 다 변했는데 오로지 국회만 수십 년째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말이 나오는 근본 이유는 18대 국회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첫날을 미디어법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농성으로 맞은 이후 지난 한해 국회 풍경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7월에는 미디어법 강행 처리 과정에서 여야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야가 4대강 사업과 노조법을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하는 바람에 예산안은 12월31일 밤 늦게, 노조법은 1월1일 새벽에야 통과됐다.
여야 대치 와중에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관련 법안은 처리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상시 국회 도입, 필리버스터제 허용, 법안자동상정제 도입 등 갖가지 국회 개혁 방안이 거론됐지만 실제 개선된 것은 없다.
때문에 보다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한국 사회가 '다갈등 사회' 로 가는 상황에서 국회가 갈등 중재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토론과 타협을 중시하는 숙의(熟議)민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3일 "1970,80년대가 참여민주주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여야를 비롯한 각 세력들이 룰을 지키면서 충분히 대화해 타협점을 찾는 숙의민주주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야당이 룰에 승복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여야 의석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투표하고, 행정부도 국회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게임)이나 제로섬게임 같은 이분법적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편가르기 정치' 를 탈피해 함께 파이를 늘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제도 내에서 이견을 해소하려는 정치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며 "여당은 정치력 발휘에 더욱 매진하고, 야당은 절차적 틀 내에서 해결을 모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당과 정파, 계파가 의원들의 의사결정을 구속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당론이 의원들을 구속해 국회가 파행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의원들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자주 크로스보팅을 함으로써 당론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오직 국민의 국회"라며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헌법 46조2항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