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누에
알림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누에

입력
2010.01.04 23:38
0 0

고치 속에서 누에는 잠들어 있을까

꿈꾸고 있을까

혹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마다의 고독한 집 한 채씩을 짓고

그 속에 웅크린 누에를 보면

나는 그것들이 다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할 순 없다

캄캄한 결박 속에서, 누에들은

제 똥구멍을 제 입으로 핥으며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어느 찬란한 봄날

배추밭을 팔랑거리는 부드럽고

연한 나비를 사랑하지만,

(누에더러 물어 봐-벌레의 목숨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 아녀!)

누에가 얼마나 쓰라린 어둠 속에서

울다가 싸우다가 지쳐 고꾸라졌는가는

모른다. 모르니까 그들은

누에가 다만 잠잔다고 말한다

잠자다 깨어 허물을 벗는다고 말한다

(누에더러 물어 봐-어떻게 자다 깨어

허물을 벗겠나? 싸우다 지쳐 쭈그러진

주름을 보여 주랴?)

가끔 꿈꾸며 잠잔 누에들은

결박 뚫지 못하고 죽는다

예전에 이문열 선생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자서전의 가장 힘든 부분을 쓰고 있다.' 책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던 선생의 나이도 이십 대, 그 글을 읽던 나도 이십 대. 그 뒤로 이따금 그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번번이 좀 힘들다고 느낄 때였죠. 힘들긴 해도 '내 자서전의 밝은 부분'을 생각하면 그게 궁금해서라도 뭘 포기할 순 없더라구요. 좀 어둡게 느껴진다면 지금이야말로 빛을 생각할 때라는 걸 잊지 마세요.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