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첫날 아침은 어떤 이들에게는 시내 가판대의 신문을 모두 사들이고 싶은, 그 신문에 뚜렷한 활자로 박혀 있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허공에 크게 외쳐보고 싶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침이 된다. 백지와 씨름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다 수백대 일,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들이 바로 그들. 그들에게 새해 첫날 아침은 마치 세상의 왕이 것 같은 기분으로 온다.
그 감격과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3일 오전,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김성태(24ㆍ시), 이지원(29ㆍ소설), 최수진(26ㆍ동시), 송혜진(29ㆍ동화), 김나정(36ㆍ희곡)씨 5명이 한국일보사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1월 1일자 한국일보 신춘문예 특집기사에서 서로의 얼굴사진과 작품만 봤던 이들이지만, '문학을 향한 열정'이란 공통분모로 이내 스스럼 없이 어울려 당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문학적 동반자로서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응모 원고에 신상 정보를 기재하지 않아 1일자 신문에 당선작만 발표됐던 희곡 부문 당선자 김나정씨가 우여곡절 끝에 참석, 자리에는 더욱 활기가 돌았다.
이들은 당선의 감동을 음미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당선 통보를 받고도 신문이 나오는 1일 새벽까지 부모님께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김성태씨는 "시를 쓴다고 말씀드리면 '고시를 해야 한다. 돈 없고 권력 없으면 살기 어렵다'던 부모님의 태도가 180도 바뀌셨다"며 "부모님께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새벽부터 신문보급소를 찾아가 한국일보 1월 1일자 50부를 한꺼번에 사셨다"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이지원씨는 "지도교수인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께 신년인사를 갔고, 선후배들과 이튿날 새벽까지 통음했다"면서 "당선소감을 읽으신 선생님께서 '내가 그렇게 혹독하게 너를 자극했냐'고 농담을 하셨다"며 웃었다. 최수진씨는 "신문에 내 글과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실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고 말했다. 송혜진씨는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주위에 동료가 없는 듯해 외로웠는데 내 작품이 실린 신문을 보고서 비로소 격려를 받은 느낌"이라며 "앞으로도 1월 1일 아침의 설렘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단이라는 첫 관문을 넘어섰지만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는 이 시대, 이야기의 주제가 '왜 나는 문학을 선택했는가'로 넘어가자 이들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김나정씨는 "꼬마 때부터 책벌레였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남극기지에 파견근무를 갔다 해도 빙판 위에 글을 썼을 것이고 아프리카에 있었으면 표범 무늬를 읽으며 글을 썼을 것"이라며 "문학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삶을 통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지원씨는 "문학하는 사람은 대부분 '더딘' 사람 혹은 '루저'라는 자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좀 거창하게 말하면 그런 부분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된 부분, 소외된 인물들을 더 잘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진씨는 "문학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 이면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문학은 가치관과 관계 있기 때문에 심각한 삶의 갈등 상황이나 정신적 혼란기에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태씨는 "과학이 문명을 발전시킨다면 문학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도 돈도 가져다 주지 않는 문학이지만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라는 문학에 관한 오랜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며 "문학은 정신의 휴식처이자 정신적 치료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 문학관은 거창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고 입을 뗀 송혜진씨는 "내가 가진 생각을 문학을 통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문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로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낙선의 아픔에 빠져 있을지도 모를 이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잊지 않았다. 최수진씨는 "어디선가 '잘 나갈 때 겸손하고 잘 안될 때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시기는 누구나에게 있다.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낙선 경험이 있다는 김성태씨는 "나도 그랬지만 아마 낙선한 분들은 지금 블랙홀에 빠진 느낌일 것"이라며 공감을 표시한 뒤 "홀로 외롭고 슬프고 남루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런 상태로 자신을 두면 오히려 쓰고 싶은 시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곡 당선자 김나정씨는 이미 2003년에 일간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기성 작가. 김씨 막 등단한 문우들을 위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등단 6년 만에 첫 소설집을 냈다는 그는 "등단도 등단이지만 그 이후가 너무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온다"며 "정말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응모원고에 이름과 주소 쓰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여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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