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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엄마를 부탁해' 소설가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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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엄마를 부탁해' 소설가 신경숙

입력
2010.01.0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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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상경했다가 행방불명되는 어머니를 찾아나선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한 문체로 묘사한 소설가 신경숙(47)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는 2009년 한국문학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순문학 작품으로는 최단 기간인 11개월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고, 연극으로도 각색돼 29일 무대에 오른다.

이 소설은 "삶의 안식처를 잃은 현대인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작품"이라는 극찬과 함께 "모성 신화를 재생산한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작가 신씨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엄마를 부탁해> 를 통해 본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작품에 대한 진실과 오해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 100만부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나도 이렇게 많이 읽힐 줄 몰랐다"고 하셨지요. 작가로서 이 소설이 왜 이처럼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지금 온기와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근원적인 욕구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모두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요. 그 근원이 허물어져 모두 다 방황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를 찾아낸 것이 아닐까해요.

누군가는 '박소녀' 엄마를 두고 시골 할머니가 고아원 가서 아이들 돌보고 기부하는 것을 두고 판타지라고 하던데, 참 오만한 얘기죠.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일수록 친밀한 공동체적 관계의 복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알지만 내가 그런 관계를 맺는 것에는 낯설지요. 어쩌면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엄마를 통해서든 아니든."

- 대중적 갈채와 별개로 신경숙 문학에 있어서 <엄마를 부탁해> 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래 전부터 엄마, 어머니에 대한 주제로 장편소설을 시도하다가 물러서고 물러서고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지니고 있는 품이 문학과 닮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사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그렇게 불시에 찾아올지 몰랐습니다. 그 문장을 기다리느라 세월이 흘러갔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느낌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처음에는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을 생각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엄마를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내 문학적 경향의 전환점은 아니겠지만 문학 인생에서 변곡점 역할은 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 더 이상 희생적인 엄마 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각자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관계가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한테도 내가 엄마가 되는, 내 안에 있는 엄마를 끄집어내서 엄마를 보호하기도 해야 하는, 그런 관계이지요. 소설 속의 박소녀 엄마가 다 해야 했던 것들은 이제 많은 부분 제도를 통해서나 사회적인 역할이나 책임을 통해서나 엄마에게서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엄마라고 했을 때 불러일으키는 그 친밀감, 정서적인 안정감, 온기, 따뜻한 손이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공동체의 감각들은 더 되살아나야 합니다. 문학의 의미있는 역할 중의 하나가 그런 공감의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것이지요. 이 소설을 읽고 함께 반응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적인 감각을 느꼈다고 봅니다."

- 문학과 엄마가 닮았다는 의미를 좀더 설명해주시면 좋겠군요.

"내가 처음 문학작품에 매혹된 이유는 무언가 해결되지 않고, 못나고 좀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패배자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었어요. 그걸 안아주고 채워주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문학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엄마의 손길과 비슷하지 않나요? 뭔지 해결되지 않는 것에 가까이 가서 그걸 들여다봐주고, 왜 그렇게 됐을까 질문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는 인간으로 하면 엄마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엄마는 서로 닮은 존재이지요."

- 작가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했지만 독자들은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심정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최근 경제위기가 있었고 엄마로 상징되는 모성이 지친 이들을 위로해줬기 때문에 소설의 호소력이 높았다는 해석도 많습니다.

"아니에요. 작가로서 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갑자기 책을 읽다가 엄마에게 전화하게 됐다든가, 안 불러보던 엄마의 이름을 불러보게 됐다든가, 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엄마에게 잘해야겠다, 엄마를 보는 위치를 좀 바꿔야겠다는 독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엄마를 여자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

- 이 소설이 표방하는 '모성 신화' 속에서 '여성 해방'을 위한 페미니즘적 주체는 억압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는 그것이 지엽적 차원으로 격하돼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지엽적이 아니지요.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산 박소녀라는 엄마가 결국에는 자식도 집도 길도 찾을 수 없는 처지가 됐으니까요. 엄마를 방황하게 한 내 마음이 편했을까요? 우리가 엄마라고 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 모성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으로 그리 한 것이에요. 엄마의 어린시절, 처녀시절 엄마의 꿈, 욕망들을 강조했습니다. 확실히 이 책은 쓴 사람보다 읽은 사람들이 더 할 말이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들의 물꼬를 터준 출입구가 아닐까 해요."

- 소설에서 헌신적이고 모든 것을 다독이는 엄마의 상이 너무 실감나게 그려져서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문학의 큰 몫이 죽어가는 것, 이미 소멸된 것, 위험에 처해있는 것에 훨씬 더 마음을 기울이고 그것을 살려내고 복원시키고 근원을 상기시키는 데 있다고도 봅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강아지나 텃밭 채소를 내가 키우면 윤기도 없고 비실비실한데, 왜 엄마가 며칠 신경써서 돌보면 생기가 돌고 살아나는지 신기했어요. 엄마가 지니는 그런 온기, 생기조차도 무슨 '이즘'에 맞춰 재단하려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자들의 반응도 다양하던데요, 직접 들은 혹은 전해 들은 사연 중에서 소개해 주신다면요.

"소설 속에 장남이 집을 처음 가졌을 때 엄마가 와서 문패 값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며 자기 이야기를 쓴 것 같다는 50대 후반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많은 남성 독자들이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장남의 독백에 공감간다고 했어요. 한국의 아버지 그리고 장남들 얘기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둘째 아들 얘기는 왜 없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둘째 얘기를 다시 써달라는 항변 비슷한 것도 들었습니다(웃음). 또 이 작품 내고 나서 엄마가 안 계신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어요. 나 정도 나이면 당연한데, 중학생 고등학생 독자들이 '저는 엄마가 없어서요…' 라고 얘기해올 때 정말 마음이 아프고, 잘 모르는데도 얘기를 다 들어주게 되더라구요. 엄마가 안 계시거나 엄마와 불화했던 이들 중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 읽으려고 했다, 내용도 모르는데 어쩐지 읽으면 울 것 같아 한참 안 읽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 알코올중독 엄마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셨다던데.

"엄마가 불안하면 모두가 불행하다, 엄마는 영향이 그렇게 큰 존재다, 그런 이야기 중심으로 강연을 했지요. 그런데 알코올중독인 내 또래 엄마가 딸을 위해 이제 술을 안 먹겠다는 서약서를 쓰더라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설 한 권 읽는다고 무엇이 그리 크게 달라지겠는가, 어떤 각성이 있었다고 해도 곧 바래지고 다시 눈앞의 일상으로 돌아와 비정하게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지요. 다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올 때 그때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에서 엄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부러 그랬습니다. 엄마 찾느냐 아니냐는 소설 안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읽어가면서 내면의 엄마와 저절로 함께하게 되니까요. 일부러 삶과 죽음의 경계에 두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그렇다고 봤어요. 엄마를 잃어버렸지만 다시 찾을 수도 있고,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두고 싶었습니다. 엄마라는 상징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삶 쪽도 죽음 쪽도 다 볼 수 있는 존재로 두었습니다. 그건 정말 문학작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언어만이 갈 수 있는 지점입니다."

- 우리 사회의 계층, 이념 갈등이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새해에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 없을까요.

"소통이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가 참 대화하는 법, 남의 마음 헤아리는 데 인색하거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난해에 더 실감했습니다. 세상은 다양하게 바뀌는데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의식은 예전 그대로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각자 각자 자기의 삶이 귀하고 거기에 충실해야 하지요. 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일정 부분 한 발짝씩 내가 뒤로 물러나 주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권력 가진 사람들이 먼저 소통에 앞장섰으면 합니다."

- 우리나라 부자들은 기부를 하지만 일회성에 그친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은 인세도 기부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바이올렛> (2001) 때부터 하고 있습니다. 인세의 1%이니 기부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액수지요. 그저 나도 뗌습?좋고요. 내가 지닌 재능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쓰임새가 있는 거 아닐까요. 미국의 자산가들이 어마어마한 기부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존경스럽습니다. 결국 기부는 누구보다 자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 근황과 신년 계획을 알려 주신다면.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장편소설의 인터넷 연재를 막 끝내고 탈고 중입니다. 지난해 <엄마를 부탁해> 때문에 바깥 일들이 많아서 벅찬 기분이었는데 나중엔 이 연재소설이 작가로서의 시간의 균형을 잡아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반기에 출간될 것입니다. 2010년에는 쓰는 것보다 읽는 시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 위해 시간을 많이 써보려고 합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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