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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김순악 할머니 별세… 생존자 88명으로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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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김순악 할머니 별세… 생존자 88명으로 줄어

입력
2010.01.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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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일본군위안부로 겪어야 했던 모진 수모들을 용기 있게 증언하며 참된 해법을 촉구해 온 김순악 할머니가 2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5살이던 43년 취직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 하얼빈과 네이멍구를 거쳐 베이징의 위안소로 끌려간다. 김 할머니는 그 곳에서 일본군위안부로 2년여 간 말 못할 고통을 겪는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압록강 건너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할머니는 해방 조국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전국 이곳 저곳을 떠돌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왔다.

한국 정부가 생계를 거든 것은 김 할머니가 70세 되던 1977년. 그나마도 가난 구제를 명분으로 한 생활보호대상자가 전부였다. 정부는 2000년에야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 대상자로 김 할머니를 선정한다.

당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시기였고, 김 할머니가 여성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후 김 할머니는 당신이 겪은 만행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며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에 근원적인 해원(解怨)을 촉구하는 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당시의 정황과 치욕스러운 경험을 한 치의 꾸밈이나 꺼림 없이, 또 거침없이 폭로해 온 김 할머니의 증언은 뜻을 따랐던 양국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정신대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2004년 일본 나고야 등지에서 벌인 기자회견을 비롯, 대구 경북지역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어진 피해 증언대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집회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 일본 정부의 사죄와 피해 배상을 촉구했다.

할머니의 사인은 오래 앓아 온 대장암이 아니라 폐질환이었다. 한 지인은 "김 할머니가 긴 세월 멍든 가슴, 풀지 못한 한을 술과 담배로 달래오셨다"고 말했다.

2008년 출간한 당신의 일대기이자 위안부 피해 실증사료로도 큰 가치를 지닌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에 김 할머니는 "남의 것 손 안대고, 남한테 해코지 안하고 내 몸뚱이로 이제껏 살아왔다 말이다! 그런데도… 가슴에서 불이 올라온다 말이다. 이런 불이!"라 적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인순 사무국장은 "집회에서 증언할 때마다 '내 속을 느그가 어떻게 아노'라며 울먹이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끝내 한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타계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는 최고령 이순덕(92) 할머니를 비롯, 모두 88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대구 중구 수송동 곽병원. 발인은 4일 오전이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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