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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기능 선진국을 가다 - 스위스(上) 기능인 교육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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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3부 기능 선진국을 가다 - 스위스(上) 기능인 교육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

입력
2010.01.0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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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토는 한반도의 5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75%는 경작이 불가능한 산이나 호수다. 인구도 760만명에 불과, 서울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스위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5,000달러(2008년 기준)나 된다.

우리나라(2만1,000달러)의 3배가 넘는다. 이런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은 얼마나 될까. 16%에 불과하다. 우린 84%다. 그럼에도 과학분야 노벨상수상자가 스위스는 30명을 넘는 반면 우린 단 한명도 없다.

결국 우리는 스위스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으며 공부도 과다하게 하고 있지만 소득은 턱 없이 적고 학문적 성과도 별로 없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한국일보기자들이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능 선진국행 비행기를 탔다.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등의 기능선진국에서는 기능인을 어떻게 육성하고 대우하고 있는지, 또 이런 교육시스템은 기업의 인력 수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등에 대해 총12회에 걸쳐 심층 연재한다.

지난해 시작한 '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기획의 제 3부인 '기능 선진국을 가다'편이다. 이를 통해 사교육비와 청년취업난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탐색코자 한다.

스위스의 최대 상업 도시 취리히에서 동남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보나두츠(Bonaduz). 인구 1,500여명의 이 산골 마을에 혈액검사 등에 사용되는 액체 검측 기구 및 장비 제조회사로는 세계적인 업체 해밀톤(Hamilton)이 있다.

창업자가 스위스 여행 중 빼어난 경치에 매료돼 공장을 세우게 됐다는 설명을 들으며 보안 검색 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백발의 숙련공이 보기에도 앳된 10대 청소년을 가르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의 두 눈은 명장(마이스터ㆍMeister)의 말 한마디, 손 끝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밝은 빛을 냈다. 인근지역 직업훈련학교에서 나온 현장 실습생들이다.

이곳 기계생산 책임자인 엘리아스 칼트씨는 "의무교육 과정인 9년의 초ㆍ중학교(Volksschule)를 마친 15세가 되면 인문계 고등학교(Gymnasium)로 진학하는 20%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이 직업훈련학교(Beufslehre)로 간다"며 "이 경우 5일중 하루만 학교에 가고 4일은 자신이 선택한 회사에서 현장 실습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곳도 기계 선반 분야에만 직원 72명 중 24명이 이러한 10대 중후반의 직업훈련학교 실습생들이었다.

주로 금속이나 쇳덩어리를 깎아 정밀 기계 부품 등을 제작하는 현장이란 것을 망각할 정도로 공장은 무척 깨끗했다. 직원들 복장도 깔끔해 마치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알프스 산맥과 잘 어울리는 회사 풍경이지만 사실 해밀톤의 생산 라인은 쉴 틈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며 신종플루 확진 검사시 필요한 해밀톤의 혈액 검사용 설비에 대한 주문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차 만한 크기의 이 장비는 한 대 가격이 최고 20억원이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2009년에도 전년 대비 매출액이 10% 이상 증가했다.

1층에서 깎은 기계 부품들이 부품 엘리베이터를 통해 2층으로 옮겨지면 2층에선 이런 부품들을 조립, 정밀 의료 기기들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소재ㆍ부품부터 모두 스위스산이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 부품을 수입해다 쓰면 이익률이 더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칼트씨는 "인간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며 "가격보단 품질이 더 중요한 법"이라고 반박했다.

밀린 주문으로 제품 생산에도 여력이 없는 해밀톤이 왜 굳이 실습생을 교육하고 있는 걸까. 칼트씨는 "언뜻 생각하기에는 귀찮을 수도 있지만 미래의 기술 인력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지금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결국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실습생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고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실습생은 이력서와 담임 교사 의견, 소질 등을 보고 회사에서 결정한다. 실습생이 되면 2~4년 후엔 정식 직원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마치 신입사원 뽑듯 실습생을 선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직업훈련학교를 가느냐 또는 인문계 고교를 가느냐를 사실상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가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데 있다.

칼트씨는 "오랫동안 학생을 지켜본 교사가 학생의 진로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지며, 부모들이 이러한 교사의 결정에 불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리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스위스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시스템이 자리잡으면서 학생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해 준비할 수 있고 기업도 미래의 재원을 미리 확보, 구미에 맞게 교육시킬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진로를 택하는 데 있어 개인적인 소모, 이로 인한 국가적 낭비를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우리처럼 과외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스위스 기업의 제조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작년 기능올림픽 출전 울만씨"제가 만든 부품이 새 삶 부여…자부심"

"내가 선반으로 정성스레 깎아 만든 금속이 한 사람의 무릎 관절이 되고, 인공호흡기의 핵심 부품으로 한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고 생각하면 자부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스위스 대표로 컴퓨터 수치 제어(CNC) 선반 부문에 출전했던 안드레아스 울만(22)씨는 왜 기능인의 길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6년전인 16세때 스위스 동부 쿠어 지역의 기계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한 울만씨는 현장 실습을 할 기업을 찾아서 이곳 저곳 견학을 다녔다.

3,4곳을 돌아다닌 끝에 액체 검측 기기 전문 제조 업체 해밀톤을 알게 됐고, 근무 환경과 주변 경관 등이 맘에 들어 현장 실습 회사로 정했다. 처음 2년간은 이곳 마이스터의 작업을 어깨 넘어 보며 배워야만 했다. 이 기간은 실습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마이스터가 지도록 돼 있다.

마이스터는 당시 울만씨가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실습생이라고 하지만 청소나 허드렛일을 시키는 일은 절대 없었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3년째 되던 해, 울만씨는 드디어 실제 작업에 투입됐다. 물론 1주일에 하루는 직업훈련학교로 가, 이론 교육도 받았다. 이렇게 4년이 지난 2007년 그는 해밀톤의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훈련생일 때 한달에 500~1,000달러 정도를 받았던 울만씨는 이제 4,000달러 정도를 받고 있다.

이렇게 해밀톤에서 정밀기계 부품 등을 제작하는 기능공으로서 실력을 쌓고 있을 때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나갈 스위스 대표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마이스터의 추천으로 스위스 국내 대회에 출전, 1위에 오른다.

그러나 국제 대회의 벽은 역시 높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6위에 그쳤다. 1위는 우리나라의 조재우(삼성테크윈ㆍ20) 선수가 차지했다.

그러나 울만씨는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준비하며 일이 훈련이고, 훈련이 일인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뤄봤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고 6위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게 웃었다.

울만씨는 "부모님은 제빵사가 되길 원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금속과 기계에 흥미가 있어 이 분야를 택했고 후회는 없다"며 "금속 부품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6시간을 기계와 씨름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만큼 성취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CNC 선반을 능수능란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1,000가지도 넘는 프로그램을 다 외워야 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꾸준히 공부하고 더 배워, 나중엔 나도 마이스터가 돼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보나두츠=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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