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마지막 날의 국회는 여당의 변칙작전과 야당의 본회의장 시위로 얼룩졌다.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지루한 법리 논쟁으로 세 차례나 연기됐다. 결국 예산안은 법정처리시한을 29일이나 넘기고서야 야당 의원들의 반대 시위 속에 통과됐다. 회개연도 개시 불과 3시간 21분 전이었다.
오후 8시 본회의가 열리자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국회의장석 주변을 에워쌌다. 이들은 "김형오는 사퇴하라"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김형오 의장은 "이것이 민주주의의 전당이냐", "날치기 뜻을 알고나 사용하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15분 뒤 김 의장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개회를 선포했다.
이후 예산안 통과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심재철 예결위원장의 심사보고부터 예산안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단 24분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예산부수법안이 처리되기 전 48분간의 본회의장 시위를 끝내고 일제히 철수했다. 대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로 몰려가 규탄대회를 열고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1일 다시 열기 위해 '공휴일인 1일자 본회의 개회건'을 상정해 표결로 의결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이날 한나라당 예산안 처리 작전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오전 7시 소속 의원들은 국회 제2회의장인 245호에 집결했다. 명목상은 의원총회였지만 실상은 민주당이 보름째 점거 중인 예결위장을 대신할 '제3의 장소'였다. 한나라당 김광림 예결위 간사는 예결위 회의장로 이동, "회의장을 변경한다"고 구두 통보했다. 허를 찔린 민주당 의원들이 245호로 몰려갔지만 출구는 이미 봉쇄된 상태. 한나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진입엔 실패했다.
한나라당은 안상수 원내대표의 모두 발언 후 곧바로 245호를 예결위 회의장으로 '변신' 시켰다. 오전 7시23분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예결위원장은 "예산안 심사를 마친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전광석화 같은 작전에 걸린 시간은 불과 12분이었다.
회의장 변경이라는 변칙 전술로 예결위에서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때만 해도 '거사'는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제사법위가 복병이었다. 김 의장의 심사기일 지정 공문이 법사위가 산회한 시간보다 6분 늦게 도착, 무효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호재를 만난 민주당은 "시험 시간이 끝났는데도 시험을 치라는 격"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김 의장 측도 "의장의 심사기간 지정 후 산회 선포했다"는 논리로 맞대응 했다.
여야는 이날 하루 종일 법리 공방과 전투태세 점검으로 본회의 승부에 사력을 기울였다. 민주당은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전략을 마련하는 동시에 규탄대회 등을 통해 전의도 다졌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온종일 본회의장에 대기하며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원내대표단은 숫자 대결에 대비해 사실상 외출 금지령을 내리고 출석을 체크했다. 외부인 접견도 본회의장 입구에서만 허용됐다. 한 초선 의원은 "점심은 김밥으로 때우고 공기도 탁한 본회의장에 계속 갇혀 있어 답답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장재용기자
김회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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