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북인인 이이첨(李爾瞻)과 정인홍(鄭仁弘)이 류성룡(柳成龍)을 주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했고, 같은 퇴계의 제자인 조목(趙穆)도 "선생이 성현의 책을 읽고 결국 한 일이 '주화오국'네 자인가?"라고 힐책했다. 당쟁의 여파이다. 이이첨과 정인홍은 북인이요, 조목은 같은 남인이나 퇴계의 수제자가 되기 위해 북인에게 협력한 것이다.
거기다가 선조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겉으로는 두둔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류성룡에게 주화의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했다. 임진왜란을 통해 선조가 한 일은 무엇인가? 의주로 달아났다가, 왜군이 계속 북상하자 백성들을 버리고, 명나라로 달아나려다 류성룡의 만류로 가지 못한 것 뿐이다.
광해군은 오히려 동분서주 왜군과 싸우기 위해 애썼지만 선조야말로 도망 다니기만 했지 한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연전연승하는 이순신을 감옥에 가두고 사형을 시키려 한 것 밖에 없다. 그러니 백성들이 선조에게 돌을 던지고, 궁궐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런데 1597년 명나라가 일본과 막후교섭을 해 화의를 맺기로 하고 조선에게 동의하라고 압력을 가해 왔다. 이젠 더 이상 군사도, 군량도 도와줄 수 없고, 또 왜적이 조공을 바친다고 하니 너희도 그만 우리 뜻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왜가 다시 쳐들어와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니 오히려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류성룡은 국제정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미 명과 일본이 화의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조선이 반대해봐야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미국과 중국이 이미 휴전에 합의했는데 이승만이 단독북진을 부르짖었다고 될 노릇이 아니었던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명 사신의 말을 잘 들어보고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결코 화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명나라 일각에서는 조선을 직할통치하거나 분할통치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선조는 분할통치하더라도 왕권만 보장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조선군은 믿을 수 없고, 명나라 군대가 없으면 나라도 자신도 지킬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성룡이 명군에게 군량을 대는 것보다 조선군을 훈련시키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으나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파에서는 류성룡이 화의를 주도했다고 매도하고, 선조는 겉으로는 류성룡을 비호하는 체하면서 거기에 동조해 패전의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려 했다. 그리하여 류성룡은 불명예 퇴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공신을 정할 때는 그를 호종한 사람을 주로 책록하고, 류성룡은 선조 묘정(廟廷)에도 배향되지 못했다.
북인정권 하에서 쓰인 <선조실록> 에는 이이첨은 성인처럼, 류성룡은 나라를 망친 원수처럼 쓰여 있다. 그나마 그가 쓴 <징비록> 과 이순신이 쓴 <이충무공전서> 마저 없었더라면 류성룡은 나라를 망친 역적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이충무공전서> 징비록> 선조실록>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