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물줄기를 따라 새겨졌고 문명은 강줄기에 기대 움터왔다. 강은 곧 생명이고 우리의 역사다.
한국일보 프리는 2010년 기획으로 한강의 물길을 따라가는 '아리수(고구려때 한강을 일컫던 옛말)길 걷기'시리즈를 시작한다.
한강의 시원인 강원 태백의 검룡소부터 강이 바다와 만나는 김포들판과 강화도까지 물길을 촘촘히 짚어가며 한강이 보듬고 있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국토순례나 탐사같은 딱딱한 걸음이 아닌 여행객의 입장으로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걷는 아리수길을 함께 찾아가는 이는 국내 답사를 전문으로 해온 승우여행사의 이종승 사장이다. 전국의 산하를 손바닥 보듯 꿰고 있는 그는 "단순히 강을 따라 걷는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던 옛길을 지나고 주변에 아름다운 산이 있으면 그곳에 올라 넓은 시야로 강을 굽어보며 한강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했다.
올해부터 한국방문의 해가 시작됐다.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오기 위해선 우리가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고 찾아가야 한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찾는 것은 우리 산하를 제대로 알기 위한 첫걸음이다.
한강의 시원은 검룡소다. 1,300리 흐르는 한강물의 가장 먼 고향이다. 검룡소가 들어선 곳은 백두대간의 허리인 강원 태백시 창죽동이다. 첫물은 그렇게 우리 땅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올랐다.
이 물줄기는 매봉산 등에서 내려온 물을 더해 태백, 정선 주민들의 식수원인 광동댐에 고였다가 골지천이란 이름으로 흘러내린다. 임계천이 합수해 세를 불린 물줄기는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어우러져 조양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후 오대산 우통수에서 시작된 오대천과 나전에서 만난 뒤 정선의 가수리에서 동남천과 합류해 동강으로 또 개명하게 된다. 이 물은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고,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완성시킨다.
한강은 이렇게 합수와 합수를 거듭하며 눈부신 문화를 만들어냈다. 아리수길 걷기는 그 문화의 현장, 역사의 발자취를 좇는 길이기도 하다.
아리수길의 첫 걸음은 검룡소부터 시작한다. 검룡소를 감싼 금대봉과 대덕산은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생태계의 보고다. 희귀 동식물이 숨을 쉬는 원시의 자연 속에서 한강이 시작되는 것이다.
검룡소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는 1.3km다. 천천히 걸어도 15~20분이면 갈 수 있고 경사가 없어 걷기도 편하다.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다. 순백의 겨울 숲길 옆으로 가느다란 물길이 이어진다. 메말랐던 물길은 위로 오를 수록 점점 수량이 많아진다.
드디어 검룡소앞.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입구의 커다란 바위엔 이렇게 쓰여있다. '태백의 광명정기 예 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
전망대에 올라 검룡소를 내려다 본다. 폭 2~3m의 물웅덩이는 맑았다. 매일 2,000톤 이상의 물이 끊이지 않고 솟으며 사철 섭씨 9도의 수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귀를 에는 영하의 날씨지만 물은 얼지 않았다. 소의 물은 바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 흘렀는지 바위에 깊게 물길이 새겨져 있다. 염주알을 꿰듯 여러 번 둥글게 물돌이 치면서 내려간 물은 또 계단식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검룡소는 한강의 처음이라는 의미 외에 그 모습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어느 강의 발원지가 이보다 영험한 모습을 가지고 있겠는가. 마치 일부러 조각을 해놓은 듯하다. 바위를 울리는 힘찬 물소리에 맞춰 가슴 속 심박동도 함께 빨라진다.
검룡소가 알려진 건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고 1987년 오대산 우통수보다 더 먼 한강의 발원지로 인정받았다.
검룡소의 숲길을 따라 다시 내려와 창죽천을 따라 걷는다. 메마른 물길 옆으론 수확이 끝난 경사진 밭들이 넘실넘실 이어졌다. 어쩌다 하나씩 낮은 지붕의 집들이 밭 한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았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집은 몇 되지 않는다.
창죽천이 35번 국도와 만나는 곳에서 매봉산 쪽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만난다. 매봉산 옆에는 삼수령이란 고개가 있다. 이곳에 떨어진 빗방울은 남해로 가는 낙동강이나 서해로 가는 한강, 동해로 가는 오십천으로 나뉘어 흘러내린다.
삼수령 인근의 매봉산은 국내 처음으로 고랭지 채소밭이 조성된 곳. 채소밭 위 능선에는 풍력 발전기가 바람을 그리고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 '고원청정으뜸쌈채마을'이란 원동마을을 지나면 특이한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표지판에는 '권상철씨집앞'이라고 쓰여있다.
달랑 집 한 채만 있는 곳이라 이렇게 이름을 했나 보다. 사람이름을 버스정류장 이름으로 쓰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물길이 크게 휘돌아가는 곳에 수석식당이란 허름한 건물이 있다. 식당 건너편은 삼척시 도계로 이어지는 건의령이다. 최근 이곳에 터널이 뚫렸다.
건의령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하들이 삼척에 유배됐던 공양왕을 만나고 돌아오다 이 고개를 넘었다. 그들은 다시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겠다며 이곳에 관복을 벗어 걸어놓았다고 한다.
삼수령 피재에서 건의령까지는 아늑한 솔숲길이다. 산보를 하듯 편안하게 백두대간의 능선을 밟을 수 있는 구간이다.
아리수길 걷기의 제1코스는 이곳 건의령 아래까지다. 다음의 2코스는 여기서 시작해 광동댐옆 임계까지 이어진다.
■ 여행수첩
검룡소에서 검룡소주차장까지는 1.3km. 35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까지는 8.3km다. 검룡소를 왕복하고 이곳 삼거리까지 걷는데 2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이후 35번 국도를 따라서 건의령까지는 걷기 보다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낫다.
건의령 앞 수석식당은 진한 맛이 우러나는 청국장, 된장찌개 등을 맛볼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 정선을 지나 태백까지 달린다. 태백시내 못 미쳐 35번 국도를 타고 임계 방향으로 좌회전해 가다가 창죽교에서 좌회전해 직진하면 검룡소에 다다른다. .
승우여행사는 9일 아리수길 걷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오전 서울을 출발해 당일 일정으로 아리수길 1코스를 답사한다. 참가비 4만5,000원. (02)720-8311
태백=글ㆍ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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