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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설] 힘을 기르고 품격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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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설] 힘을 기르고 품격을 높이자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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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인정하고 이견을 존중하는 따뜻한 관용정당한 승부와 건전한 상식에 충실한 시민사회 숨가쁜 격동의 경인년 새로운 도약을 지향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의 숨가쁜 고비에 서 있다. 격동과 혼란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역사에 고비가 아닌 때는 없었지만, 2010년은 특히 우리나라의 명운을 크게 좌우할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2009년은 갈등과 상실의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통해 분명해진 좌와 우의 반목, 보수-진보세력 간의 갈등은 해를 넘기면서 더 심해졌고, 사안 별로 정부와 국민 간의 괴리도 두드러졌다. 이어 2009년에는 미디어법 갈등에 4대강 사업ㆍ세종시 논란까지 더해졌다. 용산참사가 연말에 해결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밖의 갈등은 갈피를 잡고 해법을 모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는 국민들에게 상실의 아픔과 충격을 주었다.

이런 부정적인 유산을 안은 채 맞은 경인년 새해는 역사의 굵은 마디와 매듭이 중첩된 해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된 지 100년, 민족 최대의 비극 6ㆍ25 60년, 4ㆍ19 50년, 5ㆍ18민주화 항쟁 30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은 나라의 힘과 민족의 진로를 생각하게 한다. 내용은 달라도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아공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스포츠행사도 나라의 존재와 힘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의 고비를 맞는 해에 지자체선거까지 예정돼 있다. 당연히 각종 이념은 물론 각 계층과 지역의 모든 욕구가 총출동ㆍ총등장ㆍ총동원되는 해다. 음악에서처럼 적절한 지휘와 조율을 통한, 이른바 총주(總奏)의 절제된 화음을 빚어내지 못하면 소음 굉음 파열음만이 1년 내내 가득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와의 수교 20년으로 집약되는 전방위 외교시대를 점검해야 할 계기를 맞았다. 올해 가장 중요한 행사인 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잘 치러야 하며,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원조국으로 발돋움한 국제적 위상에도 충실해야 한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촉발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을 나누며 합심 협력해야 할 것은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위기로부터의 회복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빨라 부러움을 사고 있고, 두바이 원전 건설이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수주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견고한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청년실업, 고용 없는 성장,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슬기롭고 지속적인 해결 노력이 더 필요해졌다.

2010년은 모든 부문에서 나라의 힘을 키우고 품격을 높여야 하는 해다. 이 힘과 품격은 군사적 정치ㆍ경제적 의미의 전통적 국력과는 달라야 한다. 문화와 교양의 인문학적 토대가 갖춰진 이른바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라야 한다. 정부는 '더 큰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국격을 높이자고 강조하고 있는데, 분명한 개념 설정과 지향이 없으면 각 부처가 다투어 경쟁을 벌이는 1회성 이벤트에 그치기 쉽다.

나라의 힘과 품격을 높이려면 첫째, 관용(寬容)의 정신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배려하고 사랑 받는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사랑만 받으려 할 뿐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 한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은 반기면서도 반대로 외국문화에 개방적이지 못하며 다문화ㆍ다인종사회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각종 갈등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그 순기능을 살리는 노력에도 필수적인 요소는 관용이다. 지난해 말 발족된 사회통합위원회는 구성원의 면면에서 어느 진영으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통합 자체도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노력은 의미 있는 일이며 양 진영에서 다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정당한 승부와 승복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규정을 어기지 않는 정당한 승부와 승패논리에 익숙하지 못하며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협조라는 전통을 확립하지 못했다. 특히 승자 독식의 해악은 '전부 아니면 무'라는 극단적 사고를 더 강고하게 만들었다. "예산 통과가 힘든 것이 민주주의(한국일보 창간발행인 장기영의 말)"라지만, 국회는 지난해에도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이 얼마나 힘든가를 예산안 문제를 통해 잊지 않고 다시 보여주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건전하고 보편타당한 상식이다. 어느 사회에나 지향해야 할 합목적적이고 지배적인 가치가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다. 이를 확립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탐색과 논의가 필요하며 이 작업에는 건전하고 보斫릿聆?상식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판단과 여론 수렴을 통해 공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는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은 스스로 갈등을 유발ㆍ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진영논리의 앞장에 선 언론의 보도와 논평행위는 여론을 왜곡ㆍ조작하는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세 가지 요소의 가치를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을 때, 한국인들은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선진국 지향의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선진국이라는 개념에는 先進과 善進의 두 개념이 다 포함된다. 60년도 더 전에 백범 김구 선생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富)하고 강(强)한 나라보다 인의(仁義)로 세계의 모범이 되는 문화 도덕국가가 자신이 원하는 나라라고 말한 바 있다.

나라의 힘과 품격은 사고의 국제화, 국가 경쟁력 향상, 대외적 영향력 확대 등을 통해 신장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도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국민 각자로부터 우러나온다. 정부도 각종 정책과 제도를 통해 이런 풍토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일보사는 올해에도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라는 사시(社是)에 충실한 보도와 논평으로 건전한 공론 형성을 통한 사회통합과 발전, 나라의 힘과 품격 신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다지며 2010년의 희망과 보람, 도약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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