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거주자가 많아 '리틀 도쿄'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이촌1동). 그 복판에 자리한 이촌글로벌빌리지센터 강의실에 지난달 21일 오후 한글 교재를 든 일본인 여성 5명이 들어왔다. 한국어 강좌 초급반 학생들이다.
지난해 2월 기업 주재원인 남편과 한국에 온 노가와 토모코(35)씨는 "쇼핑도 편하게 하고 한국 친구도 많이 사귀려고 강의를 듣는다"고 말했다. 와키 유카(28)씨는 "한국말을 배우면 한국 곳곳을 둘러보고 싶다"고 했고, 무라야마 요(38)씨는 "한국어 배우기가 내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센터는 2008년부터 한국어 강좌 초ㆍ중ㆍ고급반을 연중 개설 중인데 처음 30명이던 일본인 수강생은 88명으로 급증했다. 이시하라 유키코 센터장은 "고급반 수료까지 18개월 걸리는 만만찮은 과정이지만, 개인 사정으로 급히 귀국하지 않는 한 다들 빠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엄마들이 '아이들이 한국 친구 사귈 때 어려움을 겪는다'며 강력하게 요청해 2010년부턴 어린이 한국어 강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외국인 마을 중 가장 폐쇄적인 곳으로 꼽히는 이곳의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0년 전 강제합병으로 촉발된 구원(舊怨)의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가까운 이웃'으로서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인과 교류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촌1동에 사는 일본인은 2009년 11월 현재 1,141명. 대부분 일본 기업의 국내 법인ㆍ지사에서 일하는 주재원과 그 가족이다. 이곳에 일본인 밀집 거주지가 형성된 것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일본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부터다. 재한 일본인 연구자 아사다 에미씨는 "주재 기간이 3~5년에 불과하고 반일감정 때문에 치안 불안을 느껴 일본인끼리 상호부조하는 공동체가 형성됐다"며 "한국을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여기다 보니 예전 주재원 가족들은 한국말을 배우는 일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재원 사회는 친목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JC)을 중심으로 아직까지 폐쇄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 또한 뚜렷하다. 야마다(37)씨는 이촌동 아파트에서 한국 이웃들과 6년째 친분을 쌓고 있다. "학부모다 보니 아이들 교육 문제를 많이 의논해요. 여자들뿐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번 부산 화재참사 때는 위로의 말씀도 해주셨어요."
서울 광진구에 사는 호시노씨는 2007년 입국할 때부터 동부이촌동을 피했다고 한다. 일본인과 떨어져 살아야 한국 사람을 사귀고 한국말 배우는데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 그녀는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을 좋아하던 차에 남편이 서울 발령을 받아 너무 기뻤다"며 "어학원, 요가교실, 콘서트 등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시야를 넓히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엔 동부이촌동 양국 주민이 공동 참가하는 행사가 최초로 열렸다. 외국인 전용 주민센터로 2007년 문을 연 이촌글로벌빌리지센터가 마련한 이 행사에서 일본인 250여명 등 주민 400여명이 양국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옷, 음식, 놀이 등을 체험하며 친교를 나눴다. 이은영 주임은 "첫 한일 주민 교류 행사였는데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호응이 커서 연례 행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한 일본인 전체를 놓고 봐도 양국 인적 교류는 점차 긴밀해지는 추세다. 초기 재한 일본인은 광복 이전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과 기업 주재원이 주종이었지만, 80년대 이후엔 결혼 이민자와 유학생이 급증하며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결혼 이민자는 2008년 말 현재 거주등록 일본인 1만8,251명 중 5,216명(28.6%ㆍ여성 4,703명)으로 비중이 크다. 아사다씨는 "2000년 이전엔 대부분 통일교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했지만, 최근 이민 여성 중엔 연애 결혼한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