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말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1990년부터 구 소련 영향하에 있던 중부ㆍ동부 유럽 국가들의 독립과 개혁이 본격화했다. '철의 장막'으로 불리던 공산주의 블록 와해를 지켜보며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전세계 역사 흐름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로 최종 수렴했기 때문에 이제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선언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이 지역 국가들은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영욕이 교차하는 세계사의 복잡하고 고단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었다. 한ㆍ러 수교 20년을 계기로 여전히 '나라 세우기'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이 지역 9개국을 찾아가 그들의 고민을 듣고 미래에의 전망을 나눴다. 체코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곤 그들에게 현실은 회색빛이었지만 새해의 희망은 또 모든 곳에 깃들어 있었다. 한국과 함께 할 미래도 있었다.
좌절ㆍ분노하고 있는 거인 러시아
북국(北國) 도시답게 이미 깜깜해진 지난해 12월 초 오후 5시께.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 크렘린궁전 높은 벽 한 귀퉁이의 좌회전 차선에 길게 늘어선 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기 시작한다. '경적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시위에 동참했던 택시 운전사는 시위 이유를 "크렘린 고관들 퇴근길을 위해 교통을 통제했기 때문"이라며 "러시아 사람들은 순박하지만 이런 불평등 행태에는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 대상이 실로비키(KGBㆍ군출신 엘리트)를 비롯한 고위관료인지, 러시아 부를 독차지한 신흥 올리가르히(과두재벌)인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각종 수치들도 이들의 분노와 우려를 뒷받침한다. 잘나가는 듯 보이던 러시아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유가하락으로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2007년 8%를 넘어서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마이너스 7.5%를 기록할 전망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후진국형으로 변해버린 산업구조다. 20년간 중국의 산업생산이 4배 이상 늘어난 반면 러시아는 소련시절보다 후퇴했다.
블라디미르 폴랴코프 고르바초프국제재단 고문은 "중국이 20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시장경제 도입과 유럽연합(EU)이 40년 이상 계속해온 국가간 연합 시도를 구소련 연방국의 경우, 불과 1년 만에 각 자치공화국 지도자 3~4명이 뚝딱 해치웠다"며 "오늘날 러시아 모든 문제의 뿌리는 20년 전의 급격한 변화"라고 말했다.
카네기재단 모스크바센터 안드레이 V. 리야보프 박사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리더십은 법ㆍ제도를 무시했고 부패했다"며 "러시아는 결국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으로 미국을 넘볼 것으로 전망됐던 아르헨티나가 리더십 부재로 좌절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렉산더 딘킨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은 불만스런 현실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희망을 찾는다. 그는 정부의 강력한 주도로 환율을 통제하고,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확대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택한다면, "냉전 시절 미국과 맞섰던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패의 덫에 빠진 자원부국 우크라이나
"한국인들이 1998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나섰다는 일화를 듣고, 현재 외환위기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다면 어찌할까 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동참하겠다'는 응답이 1.2%에 그쳤습니다." 우크라이나 시사주간지 '제르칼로 네젤리(금주의 거울)'의 율리아 모스토바야 편집부국장 입에서 한국 얘기가 나오자 서울과 키예프 사이 7,300㎞ 거리가 부쩍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달리 드넓고 비옥한 농토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한다. 우주ㆍ항공ㆍ정밀기계ㆍ컴퓨터 분야의 기술력은 한국을 능가하기도 한다. 서구자본은 우크라이나가 '제2의 폴란드'가 될 것이라며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매년 무역적자를 내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처지가 됐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금 1991년 독립 후 가장 중요한 선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1월 중 치러지는 대선은 당면한 국난극복 방향과 함께 장차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 나가느냐,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느냐를 선택하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대선 경쟁에서 1위를 달리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총리나 2위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는 출신지역만 다를 뿐 모두 권력과 유착해 큰 부를 움켜쥔 올리가르히 출신이고 공약도 대동소이하? 선택의 기회가 사실상 박탈된 것이다. 2004년 오렌지혁명을 성공시켰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열정은 빅토르 유센코 대통령의 무능과 정부ㆍ의회를 장악한 올리가르히의 위력 앞에 환멸로 뒤바뀐 상태다. 잔 키록 키예프TV 사장은 "오렌지혁명 이후는 잃어버린 5년"이라고 단정했다.
키예프 대학생들에게 앞서'금 모으기' 여론 조사결과를 말해주고 반응을 살폈다. "정말 1.2%나 될까요. 속마음은 그보다 훨씬 낮을걸요."
동ㆍ서 모두로부터 고립된 벨라루스
벨라루스는 구 소련시절 석유화학산업 중심이었으며 트럭ㆍ버스ㆍ농기계 및 각종 기계장비의 생산기지였다. 지금도 생산품이 대부분 러시아, 우크라이나, 발틱3국, 카자흐스탄 등 과거 소련 국가들로 수출된다. 이 중 러시아의 비중은 40%가 넘는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의 운명을 결정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러시아와 벨라루스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곳 사정에 정통한 한 외교관은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로루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총리 사이의 복잡한 라이벌 의식이 양국 관계 악화에 숨은 요인"이라고 귀띔해준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임기말인 1997년 루카센코 대통령은 러ㆍ벨라루스간 합병조약 체결이라는 승부수를 띄우며 옐친의 유력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합병은 푸틴 등 러시아내 반대세력에 의해 흐지부지 됐다.
경제위기 수렁에 빠진 지금 벨라루스는 낙후 산업설비 교체를 위해 외국자본이 절실하다. 때문에 국가소유 기업들의 해외매각이 불가피하지만, 러시아가 군침을 흘리고 있어 섣부른 공개매각을 주저하고 있다.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루카센코 대통령을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 비난하며, 투자에 소극적이다.
서먹해진 '동쪽 사촌' 러시아와 겉으로 비난 하며 제 욕심만 차리려는 '서쪽 이웃'유럽 사이에서 벨라루스는 지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모스크바·키예프·민스크=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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