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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희곡 - 여기서 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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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희곡 - 여기서 먼가요?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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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 부문 당선자를 찾습니다.

한국일보는 2010년 신춘문예 희곡 부문의 당선작으로 '여기서 먼가요?'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원고에 응모자의 이름은 물론, 주소와 전화번호 등 연락처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아 당선자를 발표하지 못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

경위는 이렇습니다. 한국일보는 신춘문예 공모 사고(社告)를 처음 게재한 2009년 11월 9일부터 공모 마감일인 12월 4일까지 총 90편의 희곡 부문 응모작을 접수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12월 15일 열린 심사에서 최종 후보작들을 검토한 끝에 '여기서 먼가요?'가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사고에 '응모작은 봉투에 응모 부문, 원고에 이름ㆍ주소ㆍ전화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십시오'라고 응모방법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규정을 지키지 않은 '여기서 먼가요?'를 낙선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당선작으로 할 것인지를 숙고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비록 응모자의 신상 정보가 누락돼 있으나 이 작품이 다른 응모작들보다 월등히 우수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응모자가 원고에는 신상 정보를 누락했지만 원고를 넣은 봉투에 기재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한국일보 신춘문예 담당자가 이를 확인하지 못한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한국일보는 '여기서 먼가요?'를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신춘문예 담당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최종 발표일까지 보름여 동안 이 작품의 응모자를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한국일보는 따라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발표하고, 발표 지면을 통해 응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입니다. 당선자가 확정될 경우 다시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응모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02)724-2319~21, 이메일 fab4@hk.co.kr

등장인물

남자 20대 중반

여자 20대 중반

아버지 50대 초반

어머니 40대 후반

무대

원룸형 주거 공간. 가운데에는 현관, 왼편에는 침대, 오른편에는 부엌공간과 화장실이 있다. 부엌은 냉장고로 칸막이가 되었다. 침대 옆에는 창이 있다.

막이 오르면 어둠. 쿵쿵, 위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왼편 창에 불꽃이 일렁거린다. 자라나듯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침대에서 남자, 이불을 찬다. 일어나 웃옷을 벗는다. 헤드라이트 불빛 방안을 홅는다. 남자의 시선 창 쪽을 향한다.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린다. 남자, 일어나서 창으로 간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 들린다.남자, 일어나 문을 향해 간다. 뒤돌아본다. 문 밖으로 나간다.

불이 켜진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 등장한다. 방을 둘러본다. 신문지를 챙기고 걸레질을 한다.

여자 오빠, 나와.

남자, 큰 상을 마주 들고 부엌에서 방으로 되똥되똥 걸어 들어온다. 끙끙대며 방 가운데 내려놓는다.

여자 (상을 둘러보고) 삐뚤어졌는데.(상 한 쪽을 잡고) 쪼금만 요쪽으로 .

남자 (상에서 물러서며 ) 됐어.

여자 삐뚤어졌다니까.

남자 (상을 둘러보고는) 됐어. 이젠 끝이지. 나올 거 나왔지.

여자 국만 노면 돼.

여자, 부엌으로 가고 남자 상 위의 그릇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본다.

남자 (생선접시를 만지며) 생선대가린 동쪽으로, 꼬린 서쪽. (창 밖 보며) 야, 우리 집, 동향이냐?

여자 목소리 몰라

남자 아침에 해가 창에서 떠?

여자 목소리 그럼, 해가 아침에 뜨지.

남자 우리 집에 나침반 없냐?

여자 목소리 건 왜 ?

남자 아니다 (접시 아무렇게나 둔다)

여자 목소리 몇 시야?

남자 (손목 본다. 시계 없다는 걸 발견한다) 그건 왜?

여자 (국자를 들고 나오며) 간 좀 봐 .

여자, 남자에게 국자를 건넨다. 남자, 국물 맛을 본다 .

여자 (조마조마) 어때?

남자 어떻긴 국 맛이지.

여자 짜? 싱거워 ?

남자 (입맛 다시며) 써.

여자 (국자를 받아들며) 써?

여자, 국물 맛본다.

여자 (울상 지으며) 요리책대로 무는 납작납작 썰고 쇠고긴 핏물 빼고, 파…소금이랑 후추. (남자 보며)그렇게 이상해?

남자 좀 이상해.

여자 설탕 좀 넣을까 .

남자 커피 타냐?

여자 미역국으로 바꿀까. 찬장에 삼분 미역국 있는데, 생일날 남은 거.

남자 대충 하자.

여자 (국자를 들고 돌아서다) 차라리 국 뺄까?

남자 빼면? 국물이 없잖아.

여자 (국자 들고 망설인다)국물 맛이 황이라며.

부엌 쪽에서 냄비 뚜껑 덜컹거리는 소리 들린다.

여자 국, 국 넘친다.

여자 급히 부엌 쪽으로 간다. 냄비 뚜껑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남자 탔어?

여자 목소리 넘쳤어. 됐어.

여자가 냄비 들고 종종 걸음 쳐 온다.

여자 아 뜨, 아 뜨거. 국, 국.

남자, 상을 둘러본다.

여자 뜨거, 빨리 빨리

남자, 그릇을 옮겨 자리를 만든다.

여자 (제자리에서 종종대며) 어디 놔? 거기?

여자, 냄비를 재빨리 상 가운데에 놓는다. 반찬 그릇 몇 개가 밀려 바닥에 떨어진다.

여자 (두 손을 호호 불며) 어쩌지?

남자 어쩌긴 걸레.

여자, 화장실로 사라진다. 천장에서 구슬들이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남자, 턱을 위로 빼 올려다본다. 여자, 걸레를 들고 나와 바닥에 놓고 그릇을 포갠다. 구슬,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여자 (걸레질치며) 또 시작이네.

남자 (천장을 올려다보며) 쥐새끼들.

여자 참자.

남자 안 참으면?

남자, 보이지 않는 구슬을 찾듯 천장을 보며 움직인다.

여자 (접시를 챙겨 일어서며) 음악 틀까?

남자 관둬.

여자 (부엌 쪽으로 가면서) 그치겠지. 쫌 있으면.

남자 비냐?

여자, 방으로 돌아온다.

여자 (앞치마를 풀며) 안 오시네요.

남자 (현관 쪽을 바라보며)온댔어.

여자 분명 온댔지?

남자,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기다리자.

남자와 여자 인형처럼 침대에 나란히 앉는다. 대사는 정면을 보고 한다.

여자 음식, 식겠다.

남자 데우면 돼.

여자 영영 안 오면?

남자 영영 안 오긴.

남자, 침대에서 일어나 창으로 간다.

남자 (창밖 내다보며) 올 거야.

여자 (일어나 화장품 가방을 꺼낸다) 보여?

남자 아니.

남자, 창문을 연다.

여자 (화장을 고친다) 추워, 창문 닫아.

남자 냄새나잖아.

여자 (립스틱 바르며) 먼지 들어올 텐데, 향 피울까?

남자 (창 밖을 내다보며) 왜 이렇게 깜깜해.(발돋움하며)가로등이 꺼졌어. 켜고 올까?

여자 누가 깼데. 돌을 던져서.

남자 누가 깼어?

여자 (입술을 오므렸다 쩝쩝대며)주인 여자가 대문 꼭꼭 잠그고 다니래. 새벽 예배를 가려고 나섰더니 대문이 열려 있었데. 새벽에 나갔어?

남자 자물쇠나 바꿔 달래. 초인종도

여자 (일어서며)아! 알았다.

남자,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마늘, 마늘을 너무 많이 넣었어.

남자 무슨 마늘?

여자 국에 마늘,

남자 그럼 써?

여자 마늘 맛이야.

남자 마늘 빼.

여자 국에서 마늘만 어떻게 빼.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여자와 남자 일어난다. 문이 열린다. 어머니가 먼저 들어온다. 한손에는 선물 꾸러미 다른 손에는 밧줄을 쥐고 있다. 어머니 뒤로 목에 밧줄을 멘 아버지 나타난다. 둘 다 선글라스를 썼다.

남자 왔어요.

여자 (현관 앞에 슬리퍼 놓으며) 이거 신고.

어머니 (둘러보며)무슨 냄새지? (미간 찌푸리며) 또, 뭘 태웠니?

여자 국을 좀.

어머니 슬리퍼를 신으며, 남자를 본다. 남자, 고개를 외로 꼰다.

어머니 (남자 보며) 넌, 여전하구나. (여자를 보며) 여전들 하셔.

어머니, 줄을 쥐고 걸어간다. 아버지, 상 모서리에 부딪친다.

여자 (아버지에게 다가가) 괜찮으세여?

어머니 괜찮긴. 길 찾는데 애 먹었다. 진 다 빠졌어.(침대 위에 털썩 앉으며)물 좀 다오.

아버지, 방바닥에서 더듬거린다. 여자, 남자에게 눈짓 보낸다. 남자, 아버지 팔을 잡는다. 여자, 부엌으로 간다. 남자, 아버지를 상 앞에 앉힌다.

여자 목소리 찬물 드릴까요? 따뜻한 물 드릴 까요?

어머니 생수. 얼음 있지?

상 앞의 아버지는 몸을 비비 꼰다. 아버지 끙끙거린다.

어머니 화장실 어딨니? 데려다 드려.

남자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화장실로 데려간다. 아버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물 잔을 들고 가던 여자가 화장실 전기 스위치를 올리려 한다.

어머니 불은 됐어. 켜나 안 켜나 깜깜해. 물.

어머니는 컵을 받아들고 물을 마신다. 여자는 쟁반을 들고 그 곁에 선다. 남자는 상 아래서 수저통을 꺼낸다. 수저를 놓는다.

어머니(컵을 도로 주며) 이 동넬 네 바퀴나 돌았어. 네 아버지를 끌고. 개천 변에서 뜀박질을 하던 남자를 세워 길을 물었지. (코트를 벗으며)세탁소에도 들어가고. 네 이름을 불러줬더니 모른 대더라. 한번도 못 들어봤대.

여자(코트를 받아들며)옷은 제 이름으로 맡겨요.

어머니 부동산을 찾아갔지. 주인장은 졸고 있었어. 나야 깰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네 아버지가 기어코 깨웠지.

화장실에서 뭔가 부서지는 恬?들린다. 여자, 코트를 들고 화장실로 가려고 한다.

어머니 신경 꺼라.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다.

여자 고생하셨겠네요, 어머님.

어머니 골목길은 왜 이렇게 컴컴하니,

여자 전활 하시죠. 그럼, 마중 나갔을 텐.

어머니 (남자를 보며) 전환 너희가 해야지. 오기로 한 사람이 안 오면 길을 잃었나, 무슨일이 있나 걱정 안돼? 너흰 궁둥이 붙이고 앉아서 기다리고, 우리는 발바닥에 땀나도록, 깜깜한 골목길을 헤매는데.(손수건 꺼낸다.)

여자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 양반 돌아가자는 걸 내가 잡아끌었다. 영영 안 만나고 살 거냐고. 이번마저 등 돌리면 영영 못 본다.

물 내리는 소리 들린다.

어머니 (화장실 쪽을 보며)꺼내드려라.

남자 (화장실로 가려는 여자에게) 넌, 밥 퍼야지.

여자, 쟁반과 물컵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버지와 마주친다. 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버지가 납작 엎드린다.

여자 (쟁반과 물컵을 양손에 들고 어쩔 줄 모른다) 일어나세요. 오빠! 아버님 좀.

남자, 아버지를 잡으려고 한다. 아버지는 남자의 손길을 피해 기어간다. 남자, 아버지를 따라 움직인다. 상 밑으로 들어간다. 상이 들썩거린다. 어머니, 일어나 아버지의 목줄을 잡고 끌어낸다.

어머니 (상 앞에 앉히며) 여기, 가만있어.

어머니와 아버지. 상 가운데 영정 사진처럼 앉았다. 부엌으로 갔던 여자, 밥을 퍼서 왔다.

어머니 기도하자.

다들, 자리에 앉는다. 둘러앉아 기도한다. 아버지만 눈을 뜨고 있다.

어머니 오늘 저희 가족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날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고, 용서하며, 감싸주고…

아버지가 밥을 손으로 먹는다. 여자는 눈을 뜨고 아버지 손에 수저를 쥐어준다.

어머니 (격해지며)우리가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게 하시며.

아버지는 수저질이 서투르다. 밥덩이가 떨어진다. 수저로 밥공기 주변을 두드린다.

어머니 지옥의 불꽃 속에서도 일곱 겹의 화염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사.

어머니 눈을 뜨고 아버지의 수저를 뺏는다. 뺨을 때린다. 아버지 누구에게 맞는지 모른다. 두리번거린다. 어머니 머리통을 때리자 아버지 웅크리고 머리를 감싼다.

어머니 (눈을 감고 수저를 쥔 채) 아멘하자. 아멘.

여자,아버지를 `일으켜 앉히고 수저를 쥐어준다.

여자 (남자 보며) 오빠, 국 좀 데워 올까?

남자 (수저질을 하며)됐어.

어머니 제 원래 국 안 먹는다 우리집 식구들은 다 국 싫어해.

여자, 제자리에 앉는다. 다들 묵묵히 수저질을 한다

여자 (접시를 아버지 앞에 놓아 주며) 여기, 고기 좀 드세요.

어머니 눈에 뵈는 게 없잖어. 그냥 주면 못 먹어. 먹여드려야지.

여자가 아버지에게 고기를 먹인다. 아버지는 받아 먹는다. 계속 밥을 먹여준다.

어머니 방은 어떻게 구했니? 돈이 어디서 나서?

남자 일해서요.

어머니 일?

여자 오빠 직장 나가요. 석 달 됐어요. 대리점에서 제일 잘 팔아요. 지난 달에는 보너스도 받아왔어요.

남자 말했잖아. 전화로 핸드폰 판다고.

어머니 뭘 팔아?

남자 핸드폰.

여자 점장님이 오빠가 세일즈에 소질이 있대요. 남들이 한 대 팔 때 두 대 팔고.

어머니 우리 집에 치와와 한 마리를 키웠지.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없어졌더라. 목걸이와 개집만 남았어. 난 셰리가 집을 나간 줄 알았어. 길을 잃었구나. 온 동네를 쏘다니며 전단지를 붙였단다. 눈앞이 깜깜했지(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셰리 찾아요. 골목길을 돌았지. 우리 셰리 못 보셨나요. 경찰은 갠 안 찾아준대.

남자 그 개새낀 너무 시끄러웠어. 나만 보면 짖고.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으르렁으르렁.

어머니 저 앤 개를 샘냈단다. 아주 작은 개였어. (밥그릇을 가리키며) 요런데 쏙 담길

정도로 작고 귀여운 개였지.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자식새끼 같은 개새끼였다. (여자를 보며) 그런데 말이다, 얘야 그 개가

여자 예 셰리요, 어머님.

어머니 저 애가 쉐릴 팔아넘겼어. 상자에 넣어 넘겼대, 개장수에게. 팔 천원 받고, 개값으로.

여자 … 팔천 원이요?

어머니 오토바일 사려고 했대. 치와왈 팔아서. (웃는다) 한심한 새끼지.

남자 그만 해. 그 거짓말 지겹지도 않아?

여자, 앞치마로 아버지 입가를 닦아준다.

어머니 거짓말이라니. 네 아버진 널 죽도록 팼어. 죽을 뻔했잖아. 고막도 터지고. 난 너무 무서웠어. 종찬 아빠, 다신 개 애길 안 할게. 그 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 (가슴을 어루만지며) ? 물이 없구나.

여자, 일어나 부엌 쪽으로 간다. 천장에서 쿵쿵 소리 난다. 어머니, 위를 올려다본다. 쿵쿵 소리에 따라 고개가 움직인다.

어머니 무슨 소리니?

남자 윗집 애들이에요.

어머니(혀를 차며) 좀 올라가 봐라.

남자 소용없어.

어머니 그럼, 내버려 둬? 어민 뭐 한대?

여자 (물잔 건네주며) 애들만 있어요. 일곱 살이랑 다섯 살.

남자계집애랑 사내애.

어머니 애들만 두고 어민 어디 갔대?

남자 …없어요. 죽었어요.

어머니 죽어?

여자 (천장을 올려다보며) 지난달에 죽었어요.

천장 쪽 소리 더 커진다.

어머니 애들 애빈?

남자 감옥에요.

여자 다음달에 이사 간데요. 시골로.

남자 얼마 안 남았어.

아버지, 비틀비틀 일어선다. 천장의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여자, 아버지를 앉히려고 한다. 아버지는 꼼짝도 안 한다.

어머니 … 앉아 여보.

아버지, 뒤 돌아본다. 소리 나는 곳을 찾는다.

어머니 귀 먹었어! 앉아.

남자 앉아. 아버지.

여자, 아버지를 앉힌다.

여자 조금 있으면 멈춰요.

천장에서 통통, 소리 들린다.

여자 오빠가 공을 던지면(공 던지는 시늉) 여자아인 주우러 가요. (천장에서 발자국 소리들린다.) 방이 좁아서 공은 금세 멈춰요. 주워 와선 다시 던져달라고 해요. (공 소리다)오빤 공을 화장실로 던지고. 여자 아인 쫓아가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잠잠해져요.

소리, 그친다.

어머니 국이 맛있구나

다들, 수저질 한다. 아버지 상 옆에서 주전자를 더듬어 주둥이에 입을 댄다. 여자, 앞치마로 입가의 물을 닦는다.

어머니 깜빡할 뻔 했다.(가져온 선물꾸러미를 건네며) 우리 가거든 풀어봐라. 참 예정일이 언제랬지?

여자 (고개를 숙이며) 내년 봄이요. (배쪽을 보며) 3월 말쯤이랬어요.

어머니 아직 멀었네. 초산이랬나?

여자 (고개를 숙인다) 예. 낳긴 첨 낳아 봐요. 병원에서 쌍둥이래요. 여자애랑 남자애.

어머니 쌍둥이? 어쩌다? (남자를 보며) 여기서 기를 참이니? 너희 둘이.

남자 그럼? 생긴 앨 어쩌려고.

어머니 나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 너는 저 애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겠다고 했지. 오토바이 헬맷으로 방바닥으로 쿵쿵, 두드렸어. 넌, 팔짱을 끼고 날 노려봤지.

여자 (고개를 숙인다) 그때 저흰 어렸어요. 오빤 갇혔고.

남자 아버진, 날 가뒀어.

어머니 몇 년이 흘렀지. 넌 우리에게 전화를 했어. (수저를 놓는다) 난 사실 놀랐다. 네가 우리에게 연락을 할 줄 몰랐어. 설마 먼저.

여자 제가 부탁했어요, 오빠한테. 오빤 검정고시도 치른댔어요.

어머니 죽은 사람한테 아니, 죽은 셈쳤던 쳤던 쟤한테 전화가 온 거야. 밥을 먹자고.

여자 (고개를 숙이며) 예, 밥이요.

어머니 난 겁이 났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려왔어. 저 애는 자기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했어.

(전화벨 소리 남자 목소리 들린다) 어머니, 저는 정말 새사람이 되었어요. 곧 아이 아빠가 돼요. 전, 새로 다시 살아볼 거예요. 아버지는 도리질을 친다.

어머니 네 아버진 싫다고 하셨다 . 난 밥 한 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다.

여자, 고개를 조아린다.

어머니 그럴 것 없어 .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으니까. 셰리는 죽었고, 네 아버지와 난 언제나 불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어. 나는 눈을 감았다. 널 볼 수가 없었다.(아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며)아버진 눈을 떴지.

아버지는 주섬주섬 일어난다. 사방을 더듬거린다.

어머니 네 아버진 널 봤다. 똑똑히.

남자 …

어머니 눈이 멀었지. 널 보고는. 애빌 죽이려는 널 보고는

여자 실수였어요.

어머니 쟬 낳은 게 실수지,

아버지, 현관으로 기어간다. 불이 난 집안에서 달아나려는 듯 절박해 보인다.

어머니 (일어서며) 여보 그쪽이 아니야.

아버지, 벽에 머리를 부딪친다.

어머니 이젠 달아나지 않아도 돼

여자와 남자도 일어선다. 남자, 아버지를 뒤에서 안는다. 아버지, 몸부림친다. 남자 아버지를 질질 끌어 자리에 앉힌다.

여자 아버님, 물, 물 드릴까요?

남자 걸레, 뭐해 … 걸렐 가져와

어머니 저 사람은 아주 순해졌어. 아이처럼.

여자 오빠도 잠을 못자고 새벽녘까지 뒤척여요. 자다가 땀을 흘리고 헛소리도 해요. 울면서, 울면서 잘못을 빌어요. 자다가 집을 뛰쳐나가요. 신발도 안 신고.

어머니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게다. 언젠가는.

여자 아니에요. 오빠는 새사람이 되었어요. 우린, 행복하게

어머니 언제까지?

여자 실수였어요. 어머니, 그땐 우린 너무 어렸어요. 저는 그냥

어머니 석유통을 들고 골목길로 너는 달음질쳤지.

남자 내가 시켰어. 싫다는 걸 억지로.( 여자의 손을 잡으며) 덜덜 떨길래 잡아줬어.

어머니 우린 평생 불속에서 헤맨다.

남자 아니, 실수였어.

어머니 서로를 볼 때마다 너흰 불을 보게 될 거다. 너희가 싸지른 불은 씨앗이 되어 너희마저 살라먹겠지.

여자와 남자 마주본다.

여자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눈을 감았으니까.

남자 아니야.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눈을 감았으니까.

여자와 남자 우린 아무 것도 몰랐어. 실수였으니까.

여자와 남자 서로에게서 물러선다.

어머니 (가슴을 뜯으며) 얼음을 다오 .

아버지 (벽에 몸을 부딪친다) 여기서 나가자. 문 좀 열어줘!

아래층에서 고함소리 들린다 .

남자 목소리 미쳤어! 너희들 왜 밤마다 못을 박아대.

어머니 (아버지를 잡는다) 가요.

남자 제발, 가세요.

어머니 우릴 부른 건 너희들이야. 매년 이날, 너희가 우릴 애타게 불렀잖아.

남자 안 불렀어.

아버지 (무슨 소리를 들은 듯 몸을 일으킨다) 가자, 여기서 나가자.

여자 (가로막으며) 이렇게는 못 가세요. 그냥은 못 가세요 .

여자, 아버지 앞에 엎드린다.

여자 용서한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말해!

아버지, 엎드려서 짖어댄다.

어머니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며) 아인, 봄에 나온댔지. 그래, 봄. 내년이면 네 아이들을 볼 수 있겠구나. 그 아이들은 너흴 잘 모르겠지. 우리가 알려줘야겠지. 너희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머니와 아버지, 밖으로 나간다. 개 짖는 소리 들린다. 오토바이 엔진소리 들린다. 남자, 창문을 닫는다. 여자, 선물 꾸러미를 푼다. 공이 떨어진다. 여자, 남자에게 공을 던진다. 남자, 받아 안는다. 남자, 여자에게 공을 던진다. 점점 둘 사이 거리 벌어진다. 조명 무대를 붉게 물들인다.

암전.어둠 속에서 공 소리가 텅텅 울린다. <끝>

■ 심사평/ 죄 지은 자의 고독과 슬픔, 극적 긴장감 있게 구축

응모한 희곡들은 대체로 삶과 죽음,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소외와 불안을 주제로 한 내용이 많았는데 최종 심사 대상에 오른 작품은 세 작품이었다.

먼저 이상훈의 '사랑의 기억'은 사랑에 대한 허상의 내면을 평온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인간사의 소소한 감정을 따듯하게 엮은 살롱 드라마 형식의 희곡인데 일상의 속내를 극적으로 만든 능력이 돋보이는 반면, 너무 소품이며 치열함의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

윤동이의 '우연호프'는 무대에 대한 계산이 되어 있는 작품으로 희곡의 구성력_시간과 공간의 짜임새가 쫀쫀하고 연극의 진행이 박진감이 있다. 당장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사가 살아있고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이 있는 작품인데, 주인공이 인간미를 발휘하는 부분에서 설득력이 약해진 것이 옥의 티다.

그리고 한국일보 측은 물론 심사를 맡은 우리들의 애를 태운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당선작인 '여기서 먼가요?'이다. 작가의 이름은 물론 주소조차 알 길 없는 작품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우선 작품을 살려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여기서 먼가요?'는 부모와의 불화와 소외로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젊은 부부의 죄의식과 불안을 그린 연극으로, 죄 지은 자의 고독과 슬픔을 치열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구축해 놓았다.

죽어서도 아들을 지배하는 부모와, 죽은 부모를 산 사람처럼 견제하는 두 관계의 극적 긴장감은 백미로 꼽을 만하다. 결말 부분의 모호성을 보완한다면 더욱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곧 작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새로운 극작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

●심사위원 한태숙(연출가·극단 물리 대표)이윤택(극작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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