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성지용)는 31일 사라진 '조선'의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 정모씨가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한국 방문을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일본 오사카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여행증명서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정부는 재일동포에 대해 한반도(조선반도) 출신이라는 뜻에서 '조선'으로 국적을 표기했다. 한일수교 이후 재일동포는 국적을 한국, 북한, 또는 일본으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이 중 일부는 국적을 새로 선택하지 않고 '조선'을 그대로 사용했다. 정씨와 같은 조선적 재일동포는 현재 7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이들에 대해 모국 방문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1962년 가입한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남북교류법에 따라 이들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고향 땅 방문을 보장해왔다. 여행증명서는 1999~2004년 1만1,819건이나 발행되는 동안 거부된 사례가 4건에 불과할 정도라 조선적 동포는 어려움 없이 한국을 방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씨는 지난 5월 학술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영사관에서 국적변경 의사를 수 차례 물어오자 정씨는 "변경할 의사도, 변경할 이유도 없다"고 대답했다. 결국 영사관은 정씨에게 "경찰청에서 실시한 신원증명이 안 됐다"며 발급을 거부했다.
정씨는 소송을 냈지만, 영사관측은 "무국적자에 대한 처분은 주권적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 국민에게 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어 소송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순한 외국인과 달리 외국거주동포에게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신청권을 보장하고 있고, 이는 법률적 이익과 관계가 있어 소송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국적변경 거부 의사는 여행증명서 발급을 제한할 수 있는 그 어떤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영사관 측은 "정씨는 조총련 산하에 있는 대학교 출신으로 북 체제를 옹호하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도리어 "영사관 측의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도 없고, 정씨는 이미 과거에도 수 차례나 한국을 방문,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등 학술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