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오랜 역사를 한민족과 함께 해왔다. 때로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맹수로, 때로는 곶감을 무서워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십이지신 중 실존하는 동물로는 공포의 대상 1순위 호랑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든든한 수호신으로 받아들였다. 산신령의 사자(使者)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여겨졌던 호랑이는 용 주작 현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신(四神)의 하나이기도 했다. 단군신화 이래 반만년 역사를 함께 하면서 신격화한 덕분이리라.
길이 3m가 넘는 육중한 호랑이가 4m도 넘게 몸을 날려 일격에 소를 때려 잡는 모습은 용맹의 상징이다. 그런 용맹성에 기대 호랑이는 주변의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이로운 존재였다. 물 불 바람에 의한 재해를 막아 준다는 그림 삼재부(三災符)에는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함께 호랑이가 등장한다. 전통 혼례에서 신부 가마에 얹은 호랑이 가죽, 양반집 규수들이 지녔다는 호랑이 발톱 노리개, 호랑이 다리를 닮았다는 호족반 등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 아이의 머리 쓰개나 베갯모 등의 호랑이 문양에도 나쁜 기운을 막아 준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호랑이는 옛 문헌 속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 주는 해학적 존재로 읽힌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호질> 에서는 호랑이가 청렴한 선비를 가장한 부패한 양반의 전형 북곽 선생을 통렬하게 비판해 서민들의 체증을 풀어 준다. 민화 '까치와 호랑이'에서 힘 없는 백성을 상징하는 까치는 권력자를 상징하는 호랑이보다 구도상 위에 앉아 훈계를 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호질>
아예 몸을 내던져 사람들에게 웃음과 교훈을 준 호랑이도 여럿 보인다. 전래동화 '토끼와 호랑이'에서 용맹의 상징 호랑이는 토끼의 꾀에 속아 불에 뜨겁게 달군 돌떡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추운 겨울 꼬리로 낚시를 하다 물이 얼자 도망도 못하고 동네 청년들에게 잡혀 죽는다. 아둔한 권력자들을 호랑이에 빗댄 민초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할머니에게 팥죽 한 그릇을 얻어 먹은 송곳 홍두깨 지게 등이 힘을 합쳐 호랑이를 물리친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는 단합과 보은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불교 사찰의 산신각에 들어앉은 호랑이의 모습은 한층 정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너 호랑이 맞니'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다. 경북 예천군 용문사 산신도에 그려진 호랑이는 루돌프인 양 붉은 코에 금빛 눈을 크게 떠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을 생김새다. 서울 화계사 벽에 그려진 호랑이는 토끼의 담배 시중을 받고 있다. 몸집만큼이나 긴 곰방대로 한껏 멋을 부린 호랑이는 한가롭게 봄볕을 쬐고 있는 옆집 노인의 풍모를 보여 준다.
속담 속의 호랑이는 유독 무섭고 위엄 있는 형상으로 비친다. 호랑이 꼬리를 밟은 격(사태가 매우 위험한 경우),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반드시 그에 마땅한 준비를 해야 한다) 등 두려움의 대상이다. 호랑이는 종종 값진 것을 대표하기도 한다. 산 호랑이 눈썹 찾는다는 속담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구하려는 부질 없는 욕심을 지적한다.
신으로, 또는 해학을 주는 대상으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공포로 자리잡은 호랑이는 역사의 모진 풍파를 헤쳐 온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모습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호돌이,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태극전사들의 가슴에 새겨진 마스코트로 되살아난 호랑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변하기도 한다. 새해는 호랑이와 같은 웅혼한 기상과 용맹함으로 온 국민이 자신감을 되찾고 재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10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호(白虎)의 해라지 않은가.
도움말=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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