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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가 찾은 희망 2010] <1> 열린 주거공동체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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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가 찾은 희망 2010] <1> 열린 주거공동체 '빈집'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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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속 열린공동체, 우리도 해보자" …옥탑방엔 '더불어 향기' 그득

주거문제에 대해 대안을 찾는 젊은이들은 '빈집' 거주자 뿐만이 아니다.

'빈집'처럼 직접 방을 구해 열린 공동체를 시도하고 있는가 하면, 돈 없는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방식의 재개발에 대해 직접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제2의 빈집을 꿈꾸며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흑석3동 주택가 10평 남짓한 옥탑방에서 만난 김이경(25ㆍ여), 주세운(24ㆍ남)씨 역시 '빈집'과 같은 도심 속 열린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두 사람을 포함한 20대 6명은 각자의 돈을 모아 지난 5월 보증금 2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이 곳 옥탑방을 얻었다. 3년 전 국제빈곤문제를 다루는 대학생연합동아리에서 만난 이들이 2008년 9월 꾸린 학습모임인 '만행'(萬行)의 활동 근거지로 마련한 것이다. 만행은 '만일(萬日) 동안 아는 것을 실천하자'는 뜻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거나 대학을 막 졸업한 24~27세. 남들 같으면 한창 취업에 매달릴 시기에 방을 얻고 모임을 꾸린 이유는 뭘까.

주씨는 "동아리에서 타인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했지만, 막상 우리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어 함께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이냐'를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

모임 출발 당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이들이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 해방촌 '빈집'이었다. 주씨와 김씨는 지난해 초 두 번 정도 빈집에 단기 투숙하면서 빈집 공동체 운영 방식을 관찰하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직은 지방 출신인 박규섭(27ㆍ남)씨만 상주하고 나머지 회원들은 수시로 들러 지내는데, 우선 함께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산행 등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중이다.

회원들이 토요일마다 함께 모여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은 공동거주를 위한 연습이다. 옥탑방은 지금도 빈집처럼 누구나 올 수 있도록 문을 잠그지 않는다.

김이경씨는 "여름에 한번 머물고 간 30대 남성이 요즘도 새벽에 불쑥 찾아와 잠을 자거나 가끔 쌀을 놓고 간다"고 말했다

비록 방 한 칸밖에 없지만, 이들의 목표는 공간을 좀 더 넓혀 '빈집'같은 도심 속 문화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조건 집을 사고, 내 집값만 오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집은 "사람들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김이경씨)이다.

주거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위해

주거 관련 시민단체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소속의 민선(28ㆍ여ㆍ가명)씨가 찾고 있는 주거문제 대안은 '대안개발'이다. 높은 비용 때문에 가난한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기존 재개발의 폐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민선씨는 실제 주거 관련 시민단체들이 모여 2년째 추진 중인 서울 성북구 삼선4구역 재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삼선4구역은 노후한 주택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정비가 시급하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건설사들이 거들떠 보지 않았다"면서 "거주민들을 위한 개발을 위해 2008년 7월부터 주민을 설득해 현재 구체적 개발안을 만들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에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서울시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저렴한 하숙집, 자취방, 음식점을 없애는 대학교 앞 재개발을 학생들이 힘을 합해 저지한 일도 있었다.

올해 초 고려대 하숙생 9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동대문구 제기동 136번지 일대를 개발해 35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는 재개발이 추진됐는데, 고려대 총학생회가 나서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7, 8월 학생 2,000여명의 반대 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제출해 11월 초에 주민과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재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서울시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서명운동을 추진한 총학생회 이상철(26)씨는 "학생과 지역주민이 똘똘 뭉쳐 건설사의 이윤만을 생각한 재개발을 일단 멈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젊은 학생들도 본인의 주거권에 대해 눈을 뜨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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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는 것 아닌 사는 곳, 빈집 문은 언제나 열려있죠"

하숙방 한 켠에서 홀로 떡국을 먹고 있을 젊은 그대, 밀린 방세 걱정에 한숨 쉬고 있나요. 앞으로 수십 년을 벌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든 가혹한 운명에 잠을 뒤척이나요. 집이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살(buy) 것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이 싫지만 대안이 없다고요? 여기 좀 다르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고집만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대안주거를 꿈꾸는 젊은이들. 한국일보 신입 강아름기자가 그들이 모여 사는 현장 '빈집'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빈집'은 서울 한복판인 남산 기슭 아래 용산2가 '해방촌'에 터를 잡고 있어요. 2008년 2월 이곳의 4층짜리 한 다세대주택 4층에 처음 둥지를 튼 '아랫집'(방 3칸ㆍ90㎡ 규모)과 인근의 '윗집'(2008년 11월), '옆집'(2009년 2월), '가파른 집'(2009년 4월) 등 네 채가 모두 빈집이에요.

빈집은 하루 2,000원 이상(한달 6만원 이상)의 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와서 머물 수 있어요. 하루를 묵고 갈 수도, 몇 달을 지내는 것도 자유랍니다. 저도 단돈 1만원에 5일간 투숙했지만 눈치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이 돈은 전세 대출금 이자와 공과금, 생활비로 쓰입니다.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일반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와 비슷하지만 주인이 따로 없이, 장단기 거주자들이 공동으로 꾸려간다는 점이 달라요. 집 전세금도 이들 여럿이 함께 마련했다는군요. 주인이 없는, 하지만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 그래서 이름도 '빈집'이래요. 손님(賓)들의 집, 가난한 이들(貧)의 집이란 뜻도 담겨 있다는 군요.

빈집은 처음에 아랫집에서 3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네 곳 합쳐 20여명이 장기 거주 중인데, 아기가 있는 부부를 포함해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어요. 하루 이틀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한달 20명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빈집을 잠만 자는 저렴한 여관으로 생각해선 곤란해요.

장단기 거주자들이 함께 모여 대안적 삶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열린 주거공동체'를 지향하거든요.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달 27일 옆집에서 열린 빈집 거주자의 '마을회의'를 한 번 엿볼까요?

"새해에는 식생활 포럼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빈집에 채식주의자가 많으니까 '오징어는 과연 채식인가' 얘기를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반찬팀원인 지음(34ㆍ남)이 새해 계획을 발표하자 20여명이 둘러앉은 거실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지네요.

이어 영상팀은 겨울이 지나기 전에 영화제를 열겠다고 하고, 새로 발족한 건강팀은 등산을 하면서 빈집 사람들이 먹을 약수를 떠오겠다며 각각 새해 포부를 밝힙니다. 이외에도 막걸리와 맥주 등을 직접 빚는 주류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웹팀 등 총 10여개 팀의 발표가 이어졌어요. 빈집 사람들은 누구나 한 팀 이상에 참여해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역할을 나눠 맡습니다.

4개월 전부터 아랫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연두(27ㆍ여)가 "팀 활동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걸 지향해요. 건강팀이 등산을 하면서 약수를 떠다 나눠주는 것처럼요"라고 귀띔하네요.

참, 지음과 연두는 별명이랍니다. 빈집에선 서로 별명으로 부르고 나이를 따져 묻지도 않는대요. 지난 8월부터 아랫집에서 머물고 있는 마에노(35ㆍ남)가 말했습니다. "제 별명도 빈집 사람들이 어느 만화 캐릭터와 닮았다며 지어준 거에요. 서로 별명으로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형, 동생의 존칭이 없는 수평적 관계가 되더라고요."

빈집 곳곳은 환경친화적 요소도 가득해요. 화장실 앞에 "직립소변은 옥상에서"라는 팻말이 붙어 있길래 4층 꼭대기로 올라가봤더니 여러 상자에 흙을 담아 야채를 재배하고 있더군요. 마에노는 "소변을 며칠만 놔두면 냄새도 사라지고 훌륭한 비료가 된답니다. 상추와 파, 무 등은 직접 재배해 먹어요"라며 잘 자란 무 하나를 쑥 뽑아 보여줬어요.

빈집의 첫 거주자 중 한명인 지음은 다른 거주자와 함께 자전거로 문서나 작은 물건을 배달하는 '자전거 메신저' 사업을 하고 있어요. 국내에선 처음이자 유일한 자전거 퀵서비스라는데 배달시간은 오토바이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은근히 자랑하네요. 지음은 앞으로 영수증에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배달했을 때 발생했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나 사라질 나무 수를 표기해주는 것도 계획하고 있답니다.

빈집은 도심의 높은 주거비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공간을 제공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2년 전 서울에 올라와 하숙집과 고시원 등을 전전한 '잇'(20대 초반)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지난해 1월부터 빈집에 살게 된 경우에요.

한달 6만원 가량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공동체적 삶을 俎置求?이들. "열 명이 혼자 살면 열 집에 세탁기, 냉장고 등이 다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낭비에요. 항상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살면 적은 비용으로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요."

이러한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이미 몇몇 국가들에선 꽤 널리 퍼져 있다고 해요. 4월부터 장기 투숙하고 있는 독일인 미샤엘(32ㆍ남)은 "유럽은 1970년대 이후부터 성별 상관없이 아파트 내에 있는 주방이나 거실 등을 공유하는 게 일반적이 됐지요. 싸잖아요. 그래서 저는 빈집 생활이 크게 놀랍지 않고 지금껏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보니 빈집처럼 사람들 얘기로 가득한 집도 드문 것 같네요. 텔레비전 한 대 없지만 이곳 사람들 틈에 있으면 심심할 겨를이 없어요. 집이 아직도 돈으로만 보이세요? 일단 빈집에서 하루만 묵어 보세요.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빈 집' 현장에서…

● 빈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손님들은 자연스레 거실로 모인다.

그곳은 순식간에 술자리가 되고, 천연화장품을 만드는 작업실이 되고, 기타 연주를 듣는 음악실이 된다.

빈집에서 단기 투숙을 하는 동안 나는 이들의 술친구가, 천연립스틱을 사는 고객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관객이 됐다. 혼자 있기가 좀체 불가능한 이 집의 매력은 모두가 참여자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

이들은 함께 모여 농사를 짓고 장을 담그고 술을 빚어 팔기도 한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공부를 하기 위해 세미나를 열고, 대안화폐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벌인 일들만 수십 가지이니 집에서 심심할 겨를이 없다. 누구도 소유하지 않은 '빈집'이지만, 누구나 집을 마음껏 향유했다.

빈집은 우리에게 '소유냐, 존재냐'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집이 삶의 터전으로서보다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더 인식되는 지금, 이들의 실험은 우리에게 하나의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아름 기자

● 당당하고 유쾌한 실험 웃음소리가 더 커지길…

참 오랜만에 밝게 웃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흑석동 옥탑방에서 나오면서 조만간 먹을 거리를 사 들고 행복 넘치는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들의 웃음이 왜 이리 특별하게 느껴진 걸까. 조건 없는 환한 웃음은 20대의 특권이 아니던가.

그러나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20대 대부분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치열한 입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면 4년 내내 취업전쟁에 시달려야 하고, 요행히 취업을 하고 나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십수년간 뼈빠지게 돈을 모아야 한다. 정신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꿈이니 함께 사는 삶이니 하는 것은 철없는 자들의 것이 된다.

"사람들간의 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방을 구했다"는 '만행'의 당당한 변(辯)이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그들처럼 집은 살(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유쾌한 20대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성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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