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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신·구 필자 정일근·하성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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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신·구 필자 정일근·하성란 만남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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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버려진 것들/ 서로서로 껴안아 길을 만든다/ 응달진 밑바닥은 진눈깨비 다 받아/ 뽀도독 뽀도독 눈길 만들고/ 두툼하게 어는 얼음 안고/ 개울은 강으로 가는 얼음길 만든다'(정일근의 시 '겨울의 길'에서)

200자 원고지 석 장 반에 애면글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일상과 시속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를 담아내는 한국일보의 '길 위의 이야기'가 새 필자를 맞았다. 지난해 1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 코너를 맡아온 소설가 하성란(43)씨와 임무교대, 1일 첫 글을 선보인 새 필자는 경남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 정일근(52)씨.

2003년 3월 소설가 성석제(50)씨가 '길 위의 이야기'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래 정씨는 여덟 번째 필자이다. 시인으로는 황인숙(52)씨에 이어 두 번째,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으로는 처음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정씨는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으며 <바다가 보이는 교실> , <경주 남산> ,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등 10권의 시집을 상재한 중견 시인이다. 1987~98년 신문기자로 일했고, 2001년부터 울산 외곽의 농촌마을인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에 거주하며 시를 쓰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불법 포경 반대운동에 적극 나서 현재 울산, 포항 지역의 시인들과 함께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 모임'을 이끌고 있다. 등단 초기 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90년대에는 경주 일대 신라 유적과 설화를 모티프로 한 시들을 선보였고, 농촌마을에 터를 잡은 이후에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외경을 담은 빼어난 서정시를 발표하고 있다. 소월시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06) 등을 수상했다.

2009년의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는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마을에서 만난 하성란, 정일근씨는 각각 '길 위의 이야기' 연재를 끝낸 소회와 집필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하며 새해 덕담까지 함께 나눴다.

정씨는 "10년째 시골마을에 살며 느릿느릿 삶의 느림을 즐겼는데 이제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수습기자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길 위에서 공존하는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 시골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스팔트길 위를 걸어다니며 에어컨을 틀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포착하겠다"는 정씨의 열다섯 평 남짓한 집필공간의 이름은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는 뜻의 '청솔당(聽蟀堂)'. TV도 인터넷도 연결돼 있지 않다고 한다. 그의 글이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룰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는 또 "최근 매주 한 차례 어업순시선을 타고 동해바다에서 고래 생태를 관찰하고 있다"며 그것도 좋은 글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끔한 세태풍자 역시 '길 위의 이야기'의 매력이고, 역대 필자들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정씨는 "서정시인을 자처하며 은인자적하고 있는 내게 그 부분은 좀 취약할지 모르지만 부지런히 길 위를 걸어다니겠다"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 소흘히 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문화와 갈등을 겪는 외국인노동자와 동남아 이민여성들의 삶, 노인들만 남아 붕괴돼가고 있는 농촌공동체의 현실, 지역에서 느끼는 서울중심주의의 폐해 등이 그것이다. 정씨는 "대통령에서부터 봄까치꽃 같은 작은 풀꽃까지, 꼼꼼하게 지켜보겠다. 시인의 장기인 '풍유(諷諭)'로 세상을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하성란씨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주부, 직장여성이자 소설가이다. 그만큼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 이면의 진실을 포착해 '길 위의 이야기' 독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던 그는 "나는 가족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가족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려 했던 것 같다"며 "자신들의 사생활이 알려지지만 빈말로나마 '너무 재미있다'고 격려해준 가족 덕택에 1년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글로 하씨는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군기 빠진' 예비군들의 행태를 풍자한 칼럼을 꼽았다. 그는 "남편에게 취재를 해서 쓴 글인데 88개의 악플이 달린 것을 보고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많이 경직돼 있음을 실감했다"며 "용산참사 문제, 일제고사에 반대해 백지를 낸 중학생 딸의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에둘러서 쓴 점이 못내 아쉽다"고 밝혔다.

하씨는 "제 글이 도시적이었다면 정 선배의 글에서는 도시에 사는 이들이 포착할 수 없는 소재들이 나올 것 같다. 이제는 '길 위의 이야기'의 필자가 아닌 독자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며 활짝 웃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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