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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SF 영화를 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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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SF 영화를 보는 재미

입력
2009.12.31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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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타이타닉> 촬영장의 스탭들은 모두 같은 구호를 새긴 T 셔츠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쉿, 조용히 하세요. 지금 제임스 카메론과 일하고 있습니다' 카메론이 어찌나 신경질적이고 깐깐하던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던 스탭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든 셔츠다. 물론 이 미치광이 감독은 침몰한 타이타닉호에 맞먹는 세트를 만들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나는 세상의 왕'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카메론의 새 영화 <아바타> 는 흥미로운 SF 영화라고만 말 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다가오는 22세기, 아니 23세기에 대한 어떤 계시라고도 할 수 있다. 디지털이 현실을 추월하는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영화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실사 영화로 남아 있을 것인가 하는 여러 물음에 답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바타> 는 압도적 스펙터클이 주는 시각 혁명일 뿐 아니라 미래의 영화가 게임 매체와 융합하면서 현실과 실재라는 구분의 근간조차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것, 심지어 배우조차 CG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같은 영화다.

SF 영화의 재미는 그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다가올 어떤 세상, 종국에는 오래된 미래가 될'그날'을 보는 재미라고 할 것이다. 예를 들면 1927년에 만든 <메트로폴리스> 도 <아바타> 처럼 혁신적인 SF 영화였다. 이 영화의 인간 복제의 실마리나 공중을 나는 자기부상 열차는 지금 봐도 감탄할 신기술이다. <메트로폴리스> 는 막대한 제작비 때문에 비싼 극장료를 받았다. 4인 가족이 <아바타> 를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3D로 볼 경우 웬만한 콘서트 값이 드는 것을 보아 확실히 <메트로폴리스> 의 감독 프리츠 랑은 1920년대의 제임스 카메론이라 할 만 하다.

다른 SF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멀미가 날 정도로 현란한 <트랜스포머> 역시 미학적 평가를 접고 도 닦듯 바라보면 건질 구석이 없지 않다. 인간과 함께 울고 웃는 로봇, 아마도 미래에 간병이나 아기보기에 활용될 감성 로봇이나 1분 안에 캐딜럭 한대를 복사할 수 있는 디지털 스캐닝 기술은 지금도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디지털 스캐닝은 리바이스 청바지 회사에서 맞춤형 기성복 시장을 개척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SF영화는 칼럼니스트 다니엘 윌슨의 말대로 '미래 기술 프로젝트의 집대성'장이다. 대중의 욕망을 꼭 집어내는'하이 컨셉'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SF영화나 SF소설 속에는 거대한 사업기회가 숨어 있고, 미래사회의 키워드가 변형 로봇이나 괴물의 몸을 빌어 나타난다. 세컨드 라이프의 CEO 필립 로즈데일은 공상과학소설 <스노우 크래시> 에 영감을 받아 가상 현실에 조기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아바타> 를 보며 학생들과 내가, 아니 내 자신과 내가 새로운 영감을 받아 지속적인 대화를 주고 받는 커다란 장을 펼칠 수는 없을까. 제임스 카메론이 꿈꾸는 세계 속에서 장 보드리야르의 시물라시옹 이론을 꺼내도 좋고,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지우는 동양철학이 튀어 나와도 좋고 실용성 있는 미래 사회 기술에 대한 토론이 벌어져도 좋을 것이다. 그저 소비되는 것에서 탐구하고 영감을 받는 매체로. 새삼 재삼 그냥 '재미있다' '혁신적이다'라는 무더기 평들을 지나 <아바타> 를 보며 그려보는 영화를 통한 통섭의 가능성. 이것이야 말로 영화라는 매체의 또 다른 아바타, 대리물은 아닐까.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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