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협상이 마무리돼 유가족과 세입자들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유사 사태는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협상 타결은 특정 사건에 대한 일시적 합의에 불과할 뿐 재개발 사업에 대한 근본적 해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입자 영업권 인정해야
서울시는 30일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재개발과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에 대한 기존의 보호 대책을 설명했다. 시는 올해 7월 상가 세입자에게 조합원 분양 후 잔여 상가를 우선적으로 분양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정비했다. 재개발에 따른 휴업 보상금도 종전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렸다.
세입자들이 재개발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주민설명회에 대한 세입자 참여를 의무화하고 사업추진 상황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기로 조치했다. 특히 공공관리자 제도를 통해 재개발 사업 초기부터 시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개선책으로는 실타래처럼 얽힌 재개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장 내년과 2011년에 서울 전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 예정돼 있지만 현재 재개발 지역에서 상가 세입자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은 4개월 정도의 보상금이 거의 전부다.
영업권에 대한 보상 규정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높은 가격 때문에 재입주 자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개발에 들어갈 경우 영세상가 세입자들은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김수현 교수는 "영업권과 주거권 등 재산권 이외의 권리에 대해서도 정당한 보상을 해 주는 등 개발이익을 적절히 배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제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적극 나서야
서울시가 도입한 공공관리자 제도도 문제가 많다. 남은경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지자체가 사업 초기부터 재개발 사업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업체 선정과 기간 단축 등 형식적인 면에 치중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 등을 위한 실질적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재개발사업을 조합에 맡겨둘 게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을 인식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현재의 재개발은 영세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중산층 이상만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라 아무리 사업 비용을 줄여도 세입자와 서민들에게는 피해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 부장은 "초기 재개발 지구 지정 과정부터 거주민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지자체는 물리적 요건뿐 아니라 서민들을 배려한 경제적 사회적 요건까지 충족할 때 재개발 허가를 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세입자는 정보력이나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조합과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며 "공공 기관의 비용 분담과 책임 있는 조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현행 재개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3건 제출됐지만 소관 상임위에는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아 제도개선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강철원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