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흔 넘은 소설가 K는 틈틈이 '말년'을 생각해두는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뿐 아니라 친하게 지내는 우리 모두의 말년 걱정까지도 떠안게 되었다. 그녀가 생각해낸 묘안은 이른바 공동체 생활이다. 말년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말년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한편 추진력 있는 K가 그 공동체를 밀어붙일까봐 걱정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공동체에 이름 붙이는 일만은 정말 사양인데… 둘러보니 선배들 모두 '한 개성' 하는 이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꺼지지 않는 창의 불빛에까지 민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끄러운 실내 분위기 탓이었을까, 다들 들은 듯 만 듯이었다. 못 들은 척하고 있지만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다가 소설가와 시인의 평균 수명 이야기까지 이르렀다.
요즘 현대인의 평균 수명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육십대의 그 수명을 생각하니 아, 정말 말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왜 시인이 소설가보다도 2년이나 더 짧은 걸까. 보험을 하는 K의 친구가 합석하면서 막연하던 '말년'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정년을 하는 55세 이후를 말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년이 없는 것이 바로 이 일 아닌가. 어쩌면 우리 모두 말년의 단 한 작품 때문에 수많은 소설을 쓰고 또 쓰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K여, 걱정 말아라.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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