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원전수주는 이명박 대통령의 장기가 뭔가를 분명하게 확인시킨 사례다. 많은 국민이 여러 의혹을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그를 택한 기대감의 실체가 비로소 드러난 느낌이다. 과거에도 대통령들마다 경제외교, 실속외교를 표방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MB는 국가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전범 하나를 확실하게 만든 셈이다.
이럴 때는 야당이나 진보진영도 칭찬을 아낄 필요가 없다. 칭찬에 인색하면 정작 비판해야 할 때 힘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벌써부터 한편에서 수익가치나 시장규모를 크게 낮춰 보거나, 다 된 밥에 MB가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는 투의 비판들이 나온다.
칭찬할 만한 MB정부의 공
그러나 경쟁국 대통령도 그토록 공을 들였고, 또 한국이 막판 유력 경합국으로 부상했을 때 이미 세계언론에서 놀라는 기사들을 써댔던 일 등을 돌아보면 그런 식으로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수주 후 쏟아진 외신 반응은 MB의 역할이 주요 요인이었음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세종시나 4대강 등의 국내 이슈에 가려 그렇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경제 회복세나 G20에서의 위상제고 같은 외교적 성과들도 밖의 평가가 훨씬 후하다. 이는 누가 뭐라든 MB정권의 업적이다. 싫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맞다. 무조건적 폄하는 이 정권이 정말 잘못하는 일에 대한 지적조차도 상투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옳은 비판의 정당성까지 약화시킨다는 뜻이다.
정작 UAE 원전수주의 개가로 주목하고 걱정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일련의 경제외교적 성과를 통해 힘을 받았을 MB의 자신감이 거꾸로 국내정치에 대한 불신의식을 더 키우고 정치적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한층 경시하게 만들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MB가 여의도 쪽에는 일절 눈도 돌리지 않은 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서민 생활현장을 자주 찾는 모습이 국내정치에 기대감을 접은 인식의 표출로도 보여 우려되던 바였다.
이번 수주는 MB가 건설CEO로서 갈고 닦은 경험과 능력을 발현할 수 있던 최적의 기회였다. 거듭 말하건대 이는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MB만의 특기이자 강점이다. 하지만 이 강점은 내정에서는 최대의 결점이 되기 십상이다. 대개 수주경쟁이란 그야말로 완승이냐, 완패냐를 건 'All or Nothing' 게임이다. 목표를 정하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미덕이 된다. 그러나 일점돌파식 승부는 외국과의 경쟁에서는 유효하되, 국내정치에까지 적용할 것은 결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냉혹한 승부처럼 보이는 수주경쟁에서도 핵심은 협상이다. 이번 수주 건에서도 보듯 얻어낼 수익 폭은 일정 정도 양보하면서 상대의 요구조건에 맞춰 적정수준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UAE와의 합의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러 부문에서 그들의 무리한 요구마저 상당 부분 받아들였으리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게 사업, 또는 장사의 법칙이다.
자신감을 내정의 여유ㆍ포용으로
정치의 법칙도 다를 게 없다. 새해 예산안의 발목을 잡아온 4대강 사업 하나만 해도, 정부여당의 입장에서야 대운하 포기를 그렇게 다짐해도 도무지 막무가내인 야당에 고개를 흔들겠지만, 야당으로선 쉽사리 물러설 만한 상황이 또한 아니라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중 보의 개수나 규모, 사업속도를 조정하거나 아니면 일부에서 시범시공한 뒤 결과를 보아 공사를 확대하는 방식 등으로 명분을 만들어줄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무릇 덜어내지 않는 협상이란 없다.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정치에서 완승은 완패만큼이나 위험한 법이다. 후유증이나 잠재적 역풍의 크기를 키운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외에서의 성과로 커졌을 MB정부의 자신감이 적어도 내정에서는 여유와 양보, 포용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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