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의 간판인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31)과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 우승 후 한국 클래식계의 샛별로 떠오른 김선욱(21). 23일 서울 반포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을 찾았을 때 이 두 사람은 춤와 피아노 연주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내년 1월 12, 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에투알 발레 갈라' 공연을 위해서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 말 그대로 별들의 만남이다. 이들의 합작품은 20세기 초 러시아 안무가 미하일 포킨이 리허설을 하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를 보고 즉흥적으로 만든 소품발레 '빈사의 백조'다.
김선욱이 배경음악인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몸도 못 풀었다"던 김지영은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듯한 '파 드 브레' 스텝과 가녀린 날갯짓으로 보답했다. 죽어가는 백조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강렬한 동작을 펼칠 때 음악도 동시에 웅장해졌다.
연주를 하던 김선욱이 "누나, 너무 빨라요? 이 부분에서 도나요?"라고 의견을 묻자 김지영은 "그 때 그 때 달라요. 이건 클래식 발레와 달리 안무가 정확하게 정해진 작품이 아니니까 선욱씨대로 즐기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연습이 반복될수록 춤과 음악이 점차 하나로 모아졌고, 두 사람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깃들었다.
김지영은 김선욱의 연주를 두고 "숨을 쉴 줄 아는 연주다. 춤추기 편하다"고 했다. 그는 "지휘자가 무용수의 호흡을 무시한 채 문법에만 충실해 춤추기 버거울 때가 있는데, 이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각 분야의 스타들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팬이기도 하다. 김선욱은 올해 김지영이 출연한 '신데렐라'와 '라 바야데르' 등을 관람한 뒤 발레의 매력에 빠졌다. 피아노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자신과 달리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발레를 접하고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지휘자를 꿈꾸고 있는 그는 "지휘자로 누나와 꼭 호흡을 맞춰보고 싶으니 그 때까지 은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지영 또한 "지난해부터 김선욱의 공연을 꾸준히 지켜봤다. 마치 고삐를 서서히 조이는 것처럼 음악이 점점 다듬어지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에투알 발레 갈라'에서는 김지영 외에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의 서희 등 11명의 국내외 발레 무용수들이 국내 초연작 4편을 포함해 총 11개 작품을 선보인다.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이 네 작품의 반주를 맡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돌아온 스타 발레리노 김용걸은 부상으로 출연을 취소하고, 발레 마스터와 피날레 안무를 맡았다.(02)599-5743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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