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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2부 (10) STX조선해양 이철상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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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2부 (10) STX조선해양 이철상 직장

입력
2009.12.3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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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척 시운전… "건조된 선박에 생명 불어넣죠"

"그때는 공부하기가 왜 그리 싫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농촌생활치고는 나름대로 어렵지 않았었거든요."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던 STX조선해양의 이철상(52) 직장(사무직 과장급 수준)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공고'(공업고등학교)를 나왔다. 195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이 직장의 어린시절은 집안 살림살이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단다. 공부도 제법 하는 편이어서 자신만 원한다면 인문계 학교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영어, 수학에 넌더리가 난 이 직장은 결국 대구공고에 진학했다. 전기 관련 자격증을 딴 그는 76년 현대중공업 수습사원으로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초기 직장 생활은 나름대로 순탄했다. 초년병 시절이라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면 그만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해가 한 해, 두 해 넘어갈수록 '답답함'이 쌓여만 갔다. 그가 싫어했던 공부가 다시 짐이 된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이 직장의 당시 소속 부서는 시운전 분야였다. 엔진부터 발전기, 보일러, 선박 작동에 필요한 각종 계측기기까지, 선박에는 수많은 장비와 부품이 들어간다. 조선소 내부와 해외 전문업체에서 만든 부분품은 종합 조립을 거쳐 선박으로 완성되는데, 이때 이 부분품이 유기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선박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를 종합 점검하는 게 시운전 부서의 일이다. 이 직장 말대로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든 선박에 최종적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시운전을 익히기 위해 그는 그토록 싫어했던 책과 다시 씨름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조선 기술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던 70년대에는 엔진과 보일러, 계측기기 등 핵심부품을 주로 독일과 일본 협력업체에서 수입해왔는데, 매뉴얼에 쓰여있는 전문용어 대부분이 영어였다. 이 직장이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은 금방 밑천을 드러냈다. 유난히 공부가 싫었지만, 그는 시운전분야에서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겠다고 결심, 79년 울산전문대에 들어갔다.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았고, 일과 학업을 병행한 탓에 짧은 기간치고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붙었다. 당시에 통상 해외에서 엔진이나 보일러 등을 들여오면, 제작업체 엔지니어들이 조선소에 와서 시운전이나 애프터서비스를 해줬는데, 이 직장은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자주 물어봤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걸 활용하려고 했고, 직접 해봐도 생경한 건 꼼꼼히 메모를 해뒀다.

이 직장의 이런 노력은 그를 점차 달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가 가장 기억하는, 아니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일곱 시간의 사투'다. 80년대 초반이다. 여느 때처럼 다른 팀원들과 함께 바다로 시운전을 나갔다. "보일러, 발전기 이상무! 엔진 초고 속도 이상무! 배 회전 반경 이상무!" 이것저것 체크 리스트를 모두 'OK'로 채워갈 무렵, 속도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전갈이 왔다.

조타실에 올라가 보니, 당시 시운전 총 책임자였던 팀장 얼굴은 거의 사색이 돼 있었다. "팀장은 물끄러미 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보라'는 표정이었지요."막막했다.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지만, 답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계속 흘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박에 결함이 발생하면 제때 배를 주인에게 인도하지 못해 조선소를 많은 손실을 입게 된다. 시운전 담당자들의 애간장이 타는 것은 물론이다.

속도계 결함의 원인은 단순했다. 속도 측정 센서가 배 밑바닥에 장착되는데, 설치 과정이나 시운전 항해 중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 물이 배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치한 뒤, 바닥을 열고 센서에서 이를 제거했다. 7시간 동분서주하는 동안, 팀장의 마음도 많이 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가 머물러 있던 조타실 한 귀퉁이에는 빈 담뱃갑이 세 갑이나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 직장은 현재 STX조선해양에서 상선 부문 시운전의 총괄 책임자다. 현대상호중공업(옛 한라중공업)을 거쳐 96년에 STX에 온 그는 STX조선해양(옛 대동조선)의 시운전 뼈대를 만들었다. 대동조선은 당시에 큰 선박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선박의 시운전 개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STX조선해양은 현재 세계 4위권의 조선소답게 이 직장 밑에 총 3개 부문(전기ㆍ기관ㆍ갑판) 57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외부협력업체까지 합하면 70여명. 이들 손을 거쳐 가는 선박은 한 해 50여 척에 이른다. 올해는 53척이 예정돼 있으니, 1주일 1척 꼴로 시운전을 해야 한다. 녹록지 않은 일정이다. 선주가 원하는 날짜에 배를 건네줘야 하기 때문에 따로 주말이 없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시운전을 나갔다. 사명감이 없으면 쉽게 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까지 이 직장의 손을 거친 선박은 무려 600척을 넘는다고 한다. 시운전은 진해조선소에서 나와 대마도를 거쳐 다시 회항하는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이제는 엔진 소리만 들어도 문제점을 거의 잡아낼 정도. "엉뚱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평소에도 조용하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시운전하다가 조용해지면 어디엔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직장에겐 소음이 곧 행복이다. 그에게 앞으로 소원을 물으니 역시 '시끄러운 얘기'만 꺼냈다. 초대형 크루즈선을 시운전하고 싶다는 것. STX그룹이 인수한 STX유럽(옛 아커야즈)이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을 얼마 전에 진수했으니, 달인의 소원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닌듯 싶었다.

진해=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산학 공동 프로젝트 활발 추진

STX조선해양은 우수한 인재가 곧 조선강국의 미래를 이끈다는 신념 아래 산학(産學) 협력을 어느 기업보다 강조하고 있다. 먼저 서울대, KAIST, 부산대, 인하대, 창원대 등의 국내 주요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 STX조선해양에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학비를 보조하는 산학 장학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산학 장학생의 경우 채용 시 서류 전형 및 1차 면접 면제의 특혜가 주어지는데,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기업으로서는 이공계 우수인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STX조선해양은 2007년부터 서울대, 부산대, 창원대와 '조선 분야 인재 양성 및 산학 공동 연구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우수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며, 조선해양공학과와 산학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대와는 조선해양공학 전공자들의 조선공학 실무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직업적, 도덕적 책임의식을 고취하는 등 기본 소양과 능력을 두루 갖춘 조선 분야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부산대 누리사업단과 연계한 'STX-NURI-Track' 조인으로 장학생을 선발해 이들에게 국내외 연수, 입사 시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을 준다.

창원대와는 'STX조선 맞춤식 트랙 교과 과정'을 통해 장학생들에게 선박 건조 공학, 생산 관리 등의 이론 수업을 실시하며, 방학 기간에는 진해조선소 현장 실습을 시행해 실무능력도 키운다. 이외에도 장학금 전액 지급, 전원 해외연수 지원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장학생들에게 STX조선해양 입사의 우선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STX는 그룹 차원에서 대학 발전기금 지원사업을 적극 펼치고,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TX는 2008년 한 해에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등 9개교에 발전기금을 전달했으며, 금액은 총 45억원 규모에 이른다.

특히 주요 사업장이 위치해 있는 경남 창원의 창원대에는 2005년 STX중공업이 대학 발전 및 전문인력 양성사업 지원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총 10억여 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지난 16일에는 STX엔진, STX엔파코, STX중공업 등 창원지역 3개 계열사가 창원대에 발전기금 1억원을 추가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STX는 2006년 STX장학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장학생을 선발, 글로벌 핵심인재로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108명의 국내 장학생과 17명의 해외 유학장학생을 배출했다.

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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