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린 폭설로 도로 곳곳에 결빙구간이 생겨 빙판길 사고가 속출하는 가운데 운전자와 도로 관리자 사이에 책임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원은 '눈길 미끄럼 사고'에 대해 도로 관리자보다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어 운전자의 '안전 운전'이 요망되고 있다.
A씨는 2004년 충북 충주시 편도 2차선 도로를 운전하다가 얼어붙은 커브구간에서 미끄러져 도로 배수로 쪽 전신주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승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A씨의 보험사는 "결빙구간으로 차량이탈 가능성이 큰데도 전신주나 배수로 근처에 방호울타리조차 설치하지 않은 국가에게 30%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4단독 최은주 판사는 "사고지점은 그늘진 커브구간으로 A씨는 빙판길이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시속 60km로 진행하는 등 사고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원고 패소 이유를 밝혔다.
반면 국가에 대해선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면 방호울타리를 선별적으로 설치할 수밖에 없어 미설치를 관리하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6년 2월, 사흘간 15.8cm의 적설량을 기록한 충북 청원군의 한 도로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한 B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같은 판단을 했다. B씨는 시내 지하도로에 진입하다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상해를 입었다. B씨는 "폭설이 내렸는데 주의표지판도 없고, 제설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충청북도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청주지법은 "영조물(營造物ㆍ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공익을 위해 제공하는 인적ㆍ물적 시설)은 관리 주체의 재정적 제약 등을 고려해 상식적인 안정성을 갖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도로에 결빙구간 주의표지를 하거나 결빙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며 국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반면, 재판부는 B씨에게 사흘간의 폭설과 낮은 기온 등 도로상태가 불량하기 때문에 더욱 속도를 줄이고 안전 운전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과학기술이나 국가의 재정상태에 비춰 현실적으로 완벽한 제설설비를 도로에 갖추지 못하는 만큼, 운전자 스스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C씨는 경기 용인시의 한 시내도로를 운전하다가 제설작업으로 도로가에 쌓인 눈이 배수로를 넘쳐 생긴 빙판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C씨는 "배수시설 관리 소홀로 사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용인시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제설작업으로 배수시설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고속도로 같은 특수목적을 가진 도로가 아닌 일반도로까지 완전한 설비를 갖추고 안전성을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에선 도로통행의 안전성은 오히려 위험에 대면한 통행자 개개인의 책임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이처럼 운전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도로 관리자에게 완전한 인적ㆍ물적 장비를 갖추고 완벽한 제설작업을 하여 안전성을 확보토록 하는 관리의무를 지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2000년 선고된 대법원의 판례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관계자는 "빙판길 사고에 대해 국가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만큼 운전자는 평소보다 감속 운행하는 등 주의를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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